2019. 12. 9.(월)


■ 현장으로 보는 세계기독교역사 이야기 21

[881호 11면, 발행일 : 2018년 9월 12일(수)] 쿰란 유적지성경 사본 일명 “사해사본” 발견지 세계적 문화유산인 동굴벽화가 어린이들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

By editor , in 문화 , at 2019년 7월 23일

[881호 11면, 발행일 : 2018년 9월 12일(수)]
쿰란 유적지성경 사본 일명 “사해사본” 발견지
▲ 쿰란에서 발견된 진품 사해사본이 이스라엘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적 문화유산인 동굴벽화가 어린이들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 되었다. 프랑스에 있는 라스코 동굴 벽화를 동굴 구멍 속으로 들어간 개를 찾아 들어 갔던 4명의 어린이에 의해서 였고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고고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동굴로 들어간 소녀가 발견하였듯이, 겨울 어느 날 쿰란 지역에서 양을 치고 있던 베두인족 두 목동이 잃은 양을 찾고 있었다. 이들은 양을 찾아다니다가 절벽에 있는 동굴로 들어가게 되었다. 캄캄한 그곳에서 한 목동이 돌을 안쪽으로 힘껏 던졌는데, 무슨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히 여긴 두 목동은 호기심이 발동했고 소리 났던 곳으로 조심조심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자신이 던진 돌에 깨진 항아리가 시야에 들어 왔다. 대체 항아리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무슨 종이 두루마리 같은 것이 보였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귀중한 성서 사본이 세상에 들어나는 순간이었다.
성서사본이 1947년 목동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이후 학자들에 의해 1956년 까지 쿰란의 동굴 발굴이 진행되어 11개 동굴에서 감춰져있던 또 다른 사본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두루마리 성서사본을 만들고 보관한 사람들은 B.C 2세기 경 이곳에서 수도(修道)하며 생활 했던 쿰란공동체이다. 이들은 종교적 세속화에 반대해 이곳 쿰란으로 들어와 생활했던 에세네파 사람들이다. 당시에 이들의 숫자가 4천여 명에 달했고 엄격한 계율에 따라 수도원적인 공동생활을 하면서 성경 연구와 보존에 힘썼다. 경건한 생활을 하던 이들은 성서를 필사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목욕을 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임하였다. 에세네파가 이곳에서 두루마리 성서를 작성한 연대는 서기 33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서를 필사하고 보존에 힘썼던 에세네파의 ‘쿰란공동체’는 유대인 열심당의 반란이 있던 시기인 서기 68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점령 되면서 와해되었다. 이후 로마군이 주둔하면서 공동체의 흔적은 묻혀 버리고 말았으나, 1950년 경 고고학조사단의 발굴로 유적이 들어 났고 지금은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된 사해성서사본 진품은 예루살렘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되고있다.

 

▲ 에세네파의 쿰란 공동체 유적지

 

쿰란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 25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쿰란유적지에서 바라보이는 곳에 유명한 사해(死海)가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유대인 열심당원들이 로마군에 항전했던 마사다가 있다. 사막 지역처럼 뜨겁고 황량한 지역이지만 쿰란과 마사다는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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