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6.(수)


■ 현장으로 보는 세계기독교역사 이야기 23

[883호 11면, 발행일 : 2018년 10월 17일(수)] 유대인 최후의 항전지 마사다 Masada (中)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마사다를 향해 올라갔다….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19년 7월 25일

[883호 11면, 발행일 : 2018년 10월 17일(수)]

유대인 최후의 항전지 마사다 Masada (中)

▲ 아래서 볼 때와는 달리 넓은 마사다 정상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마사다를 향해 올라갔다. 아래서 올려다볼 때는 깎아지른듯 급경사인 돌산이라 정상에 넓은 공간이 있으리라곤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절벽을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올라가면서 이런 가파른 곳을 어떻게 오르내렸으며, 3년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정상은 상상 외다. 축구장 몇 개를 합쳐 놓은 듯한 넓은 평지가 사람을 놀라게 한다.

황량하고 건조한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는 환경이 부적합하다. 에서 유대인들은 로마군과 대치하였다. 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에서 마사다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마사다 요새는 원주(圓柱)처럼 생긴 높은 바위 위에 건설되어 있었다. 이 바위 사방은 깊은 골짜기들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골짜기의 밑바닥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골짜기들이었다. 이 바위산은 급경사를 이루고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두 군데의 통로를 제외하고는 동물조차도 바위산을 오르내리지 못했다.

이 두 군데 중 한 통로는 아스팔티스 호수(Lake Asphaltitis)로부터 바위 산 위로 나 있었으며, 나머지 한 통로는 경사가 완만하였는데 서쪽으로 난 이 통로를 뱀의 길(Serpent)이라 불렀다. 그것은 길이 뱀처럼 협착하고 꼬불꼬불하게 나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오르려면 매우 조심해야 한다. 미끄러지는 날에는 목숨을 내놓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올라가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이 정상에 대제사장 요나단(Jonathan the high priest)이 처음으로 요새를 건설하고 마사다(Masada)라고 부른 것이었다.」

요새로 들어가는 입구는 복원한 과거의 건물을 지나가도록 되어 있는데 허물어진 성과 요새 건물의 구석들에는 프레스코화의 화려한 색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은 로마군에 의해 파괴 되었지만 과거 자신의 거처로 사용하려던 헤롯왕의 요새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요세푸스는 – 그 후 헤롯왕은 심혈을 기울여 이 요새를 재건하였다. 헤롯 왕은 이 바위산의 정상에 7퍼얼롱이나 되는 긴 성벽을 건설하였다. 그것도 모두 흰 돌들로만 성벽을 쌓았다. 헤롯이 쌓은 성벽의 높이는 12규빗이었고 너비는 8규빗이었다. 헤롯은 또한 이 성벽 위에 50규빗이나 되는 망대를 38개나 건설하였다. -중략- 게다가 헤롯은 서쪽 경사면에 왕궁을 지었다. 왕궁은 성벽 안쪽 밑에 북쪽 성벽으로 치우쳐 있었고 각 건물과 욕실 등의 내부 구조는 다양하고 화려하기가 그지없었다. – 라고 기록하였는데, 현장에 가서 보니 실감이 간다.

헤롯은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서 이렇듯 철옹성을 건설하고 철저한 대비를 하였지만 제대로 사용한 번 못해보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아무튼 헤롯이 자신의 위험을 대비해 건설한 것인지라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로마에 저항하였다.

▲ 마사다 정상의 건물 흔적
▲ 건물 벽에 남겨진 프레스코화
김천식 문학박사  |  교회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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