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 수 없는 진실’ 형제복지원
[전주대 신문 제923호 5면, 발행일: 2022년 09월 28일(수)]
지난 8월 24일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과거의 역사적 진실을 법률에 따라 정확하게 규명하고 화해를 진전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여는 역사적ㆍ정치적 초석을 놓는 단체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 진실규명 신청자 544명에 의해 국가 기관이 형제복지원을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했다.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대한민국 부산 일대에 위치했던 부랑인 강제수용소로, 3,146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부랑인이란 사회의 관습을 거부하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추구하며 유랑하는 자를 말한다. 즉 뚜렷한 직업이나 주거지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대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였고, 외국인과 해외 언론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되다 보니 도시를 깨끗하게 보이기 위해 여러 가지 강제적인 정책을 일삼게 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형제복지원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환경미화’라는 명목으로 부랑인을 잡아 시설에 가두고 보기 싫은 집은 강제 철거해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을 준비했다. 부랑인 강제 수용의 근거는 1975년 박정희 정권이 발표한 ‘내무부 훈령 410호’로 ‘부랑인에 대해 신고, 단속, 수용, 보호하고 귀향 조치 및 사후관리로 도시 생활의 명랑화를 기하고 범법자 등 불순분자 활동을 봉쇄를 빈틈없이 한다.’라는 내용이다. 내무부 훈령 410호는 영장 없이 부랑인들을 단속하고 시설에 수용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부랑인의 정의를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저해하는 자’,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자’로 정하였는데, 이는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 누구라도 부랑인으로 지목할 수 있었다.
형제복지원은 육군 부사관이던 박인근이 1965년에 시설을 사회복지 법인화하고 부산시로부터 아동복지시설 인가를 받았다. 1971년에는 최초 목적이던 유아 보호시설에서 부랑아 보호시설로 변경했다. 이후 박정희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아 단속을 위해 발표한 1975년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만들자 부산에 있는 산 일부를 사서 이듬해 시설을 준공했다. 1979년에 형제원에서 형제복지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박인근은 1975년 이후 12년 동안 국고 횡령, 아동 강제 노동 등 악행을 자행했다. 1987년 3월 22일에 시설 직원들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그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형제복지원을 조사한 결과 부랑아 선도를 명목으로 길거리나 역에서 노숙자, 고아들은 물론 심지어 멀쩡한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끌고 가서 불법적으로 감금 및 강제 노역을 시켰다. 형제복지원은 원생들을 중대나 소대별로 나누어 관리하고 원장-부원장-총무-중대장-소대장-조장-조원 순으로 계급을 통해 수직적으로 통제하는 군대식 구조를 지녔으며, 탈출을 막기 위해 경비원 13명과 경비견 13마리를 풀어 24시간 감시했다. 축사 주위에는 철조망과 초소 2개를 설치해 ‘한국판 아우슈비츠 수용소’라고 불렸다.
1987년 6월 9일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의 김용원 검사는 결심공판에서 박인근에게 특정 경제범죄 가중 처벌법 위반, 특수감금, 초지법 위반, 외국환관리법 위반, 건축법 위반 혐의로 벌금 6억 8천만 원과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1987년 12월 12일 항소심 재판부인 대구고등법원에서 “박인근 피고인의 사회사업가로서의 공과에 대한 평가 등 정상을 참작한다.”라며 벌금 없이 징역 4년으로 형량을 대폭 축소했다. 또한, 대구고등법원은 “원생들을 수용한 것은 법령에 따른 정당행위이므로 특수감금죄 적용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라며 사건을 되돌려 보냈으며, 최종 판결 끝에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했다. 형제복지원에 있는 박인근의 대형 철제금고에는 당시 2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발견됐고, 실제 보유 재산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예상됐다. 현재 박인근 가족이 오스트레일리아에 140억 원대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인근은 2016년 6월 숨졌으며, 공소시효도 종료된 상태이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에 실체가 폭로된 이후 한동안 잊혔지만, 2012년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 씨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인권단체와 문재인 정부는 이 사건을 중대한 사건이라 판단하여 33년 만에 재조사를 약속했으며, 박인근이 받은 훈장들을 전부 박탈했다.
진실화해위원회 형제복지원 진실규명 주요 내용
- 사회 통제적 부랑인 정책 및 사회복지 및 치안 관계 법령,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산시 부랑인 일시보호 위탁계약 등을 근거로 공권력의 직ㆍ간접적 행사로 부랑인으로 칭한 사람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해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
- 부랑인을 정의하고 반속과 강제수용의 근거로 삼은 관계 법령, 지침, 계약뿐 아니라 실제 경찰 등의 단속 행위도 위헌ㆍ위법하며, 그에 따라 신체의 자유, 거주ㆍ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훼손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
-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에서 수용인은 감금된 상태에서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에 이르는 등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받았으며, 국가는 형제복지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
-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진정을 국가는 무시했고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치하지 않았으며,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축소ㆍ왜곡해 실체적 사실관계에 따른 합당한 법적 처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
진실화해위원회는 형제복지원에 총 19가지의 문제점이 존재했다고 발표했다. 진실규명에는 당시 정부, 보건사회부, 보안사령부, 법원, 경찰, 산림청, 부산시청, 부산시 직할 아동상담소 등 국가 기관이 저지른 악행을 적어놨다. 당시 정부는 국가 기관이 형제복지원을 직ㆍ간접으로 지원하게끔 유도했으며,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형제복지원 수용 정원은 500명이었으나 실제 수용인원은 2,631명으로 기준의 5배를 넘어섰으며, 1개의 내무반에 90명 이상이 함께 생활하는 열악한 환경이다. 수용소 내에서는 정신과 약물이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또한 전문의 처방 없이 간부와 원생이 임의로 투약해 온 것이 확인되는 등 수용자에 대한 통제 목적으로 ‘화학적 구속’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사망자 명단을 종합적으로 검토ㆍ대조한 결과, 시설이 운영된 24년 동안 사망한 사람은 총 657명으로 파악됐다. 사망진단서에는 대부분 환자가 응급 수송 중 사망으로 적혀 있으며, 사인은 심부전증, 결핵, 천식과 같은 ‘병사’였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화해위원회는 형제복지원이 중증 환자에 대한 치료를 방치ㆍ포기했거나, 애초에 구타ㆍ가혹행위 등 사고에 의한 사망을 ‘병사’로 조작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제시한 이번 사건에 대한 권고문
-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보상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국가는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 및 운영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ㆍ감독을 철저히 시행하고, 사회복지공무원 및 시설운영자 등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국회는 강제 실종 피해를 막기 위해 2022.6.21.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해야 한다.
-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이에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명백한 대한민국의 흑역사이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국민이 국가에 의해 시설에 갇혀 지독한 인권침해의 대상이 됐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간 것을 용인한 반인권적이고 반헌법적인 국가정책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 당사자들이 입은 피해를 복구시켜줄 보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항상 최선의 보상과 대책을 마련해주며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층 더 성장해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는 것뿐이다.
최건 기자(chlrjssm63@jj.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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