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3.(목)


겨자씨

By 전주대학교 대학신문사 , in 미분류 신앙과 선교 , at 2022년 9월 29일

[전주대 신문 제923호 10면, 발행일: 2022년 09월 28일(수)]

‘사랑’이라는 시이다. “바람도 없는데 괜히/ 나뭇잎이 저리 흔들리는 것은/ 지구 끝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기 때문.” 최종진 시인은 우리 모두 사랑으로 연결되어 서로 공명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저 멀리 지구 한쪽 끝에서 누군가 울어도 이곳의 나무가 흔들린다는데, 하물며 내 곁에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 아파하며 울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떠할까? 아픈 가족을 지켜보는 일도, 또 아픈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일도 때론 우리를 통째로 흔들리게 한다.

 

▼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포항 지하 주차장에서 죽은 15살 학생이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엄마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두 번씩이나 혼절했다. 강릉 안목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허난설헌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바깥뜰에 있는 그의 좌상 앞에는 ‘아들 무덤 앞에서 우노라’(‘哭子’)라는 시 한 편이 적혀 있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에는 하나 남은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슬픈 광릉의 땅이여·····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피눈물 울음을 속으로 삼키리라.” 마주 보고 있는 아들과 딸의 무덤을 보는 엄마의 심정, 세상에서 가장 깊고 근원적인 사랑이 자식 사랑이기에 옛날 말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청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허난설헌은 마음 깊은 곳에 깃든 속울음조차 몰아낼 수가 없어 그 슬픈 심정을, 그 처절한 아픔의 노래를 속으로, 속으로만 삼키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아프다.

 

▼ 200만 명이 넘는 코로나19 사망자, 수만 명에 이르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와 남은 가족들, 수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 사람들, 다세대주택에 살다가 절망 가운데 세상을 등진 세 모녀···· 여전히 이 세상에는 처절한 아픔을 몰아낼 수가 없어 피눈물 울음을 속으로 삼키며 아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넓고도 깊은 그 망망대해에서 예수님처럼 그들과 함께 파도치며, 같이 울고 같이 웃는 ‘옆 사람’이 되어 주는 것, 이제는 ‘하나님의 대학’ 전주대학교가 기쁨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닐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1 4:16). 아멘.

장선철 교수(상담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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