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화)


고대 동아시아 디아스포라의 표상, 최치원

-855호, 발행일 : 2016년 9월 19일(월)-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주관, 일본 원아시아재단 후원 “아시아 공동체와 디아스포라” 2주차 강의 요약> 먼저 디아스포라의…

By editor , in 기획 , at 2019년 7월 3일

-855호, 발행일 : 2016년 9월 19일(월)-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주관, 일본 원아시아재단 후원 “아시아 공동체와 디아스포라” 2주차 강의 요약>

먼저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디아스포라란 내가 어느 곳에, 어떻게 위치하던 간에 내가 가진 정체성과기본을 잃지 않고 평생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1,200여년 전의 디아스포라의 표상인 최치원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경주 최씨의 시초인 최치원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총명한 것으로 유명했다. 18세부터 여러 관직들을 임명받아왔던 그가 이름을 알리게된 것은 25세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기록한 후부터였다. 그의 글을 통해 당시 혼란스럽던 황소의 난도 진압될 정도였다. 한창 당나라에서 관직을 맡고 있던 최치원이 모시던 고변이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신라로 귀환하게 된다. 이후 최치원은 신라의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의 관직을 받고, 문한에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하게 된다.
이러한 최치원은 신라를 위해서,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가 10여년 동안 중앙의 관직과 지방관직을 역임하며 보았던 진골귀족의 부패와 지방세력의 반란을 목격하였던 것을 토대로 당시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고,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진성여왕은 6두품 최상 관등인 아찬을 하사할 정도였으나, 6두품이라는 신분상 진골들에게 수용되지 못하며 정치적인 개혁안을 실현될 수 없었다. 이는 후에 성종에게 올린 최승로(崔承老)의 상서문 중‘시무 28조’로 계승되어진다.

최치원의 사상
최치원의 사상은 크게 세 가지로써 구국적 유교관과 호국적 불교관, 제세적 도교관으로 이 세가지의 공통점을 찾아 오직‘인(仁)’으로 나라를 훈계하려고 하였다. 개인이 아닌 나라를 위한 현실적 참여의식을 강조하고, 주체성을 가지고 당당히 화해의 손을 내미는 포용과 화합을 강조하여 자신이처한 난세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으로써 대립과 분열, 갈등을 지양하고 화합과 화해를 추구하는 사상적 대통합 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교융합론(三敎融合論)에서 더 나아가 외적인 사상을 통해 신라의 가장 전통적이고근본적인 사상인 풍류도(風流道)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 최대의 유학자인그가 찾고 연구하며 화랑에 녹아져 있는 풍류도라는 원석을 발견한 것이다. 풍류도는 동인의식과 민족적 자긍심, 민족적 주체의식, 민족공동체로서의집단의식, 화합과 화해를 추구하는 사상적 대통합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진정으로 가치로운 삶
우리는 최치원이 그 시대를 살면서 일생동안 회피하지 않고, 일신상의 유익만 구하지 않고, 신라인답게 살아 내려했던 1,200여년전의 최치원이 지금의 우리에게 시대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며 깊이 인식하고, 하나라도 해결하려는 모습을 가지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로운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이런 그의 시각은 종교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이념의 갈등 등이 문제가되고 있는 현 시점에 커다란 해결점을 시사한다. 우리의 선조인 최치원은1200여년 후의 우리에게도 ‘통합’이 살길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다. 이런 최치원의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의 통합, 화합, 화해를 하는데 우리도 몫을 하기를 바란다.

강사: 이재운교수(역사문화콘텐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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