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일)


공의로운 판결

[전주대 신문 제922호 11면, 발행일: 2022년 08월 31일(수)]   한병수 교수 (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조교수/선교봉사처장/선교신학대학원장)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일평생 우리는…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22년 8월 31일

[전주대 신문 제922호 11면, 발행일: 2022년 08월 31일(수)]

 

한병수 교수

(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조교수/선교봉사처장/선교신학대학원장)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일평생 우리는 무수히 많은 판단을 내립니다. 지혜자는 말합니다.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잠24:23). 강하든 약하든 부하든 가난하든 사람들의 상태는 판단의 기준이 아닙니다. 의로운 재판의 생명은 공의의 확보에 있습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하라”(레19:15). 즉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하기 때문에 편들지 말고 권세자를 권세 때문에 두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더 공의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재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질 때에 최고의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재판에는 하나님의 뜻이 존중되지 않기 때문에 결코 공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재판의 공정성을 파괴하는 가장 대표적인 원흉으로 “사람의 외모”와 “뇌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신16:19). 아무리 지혜롭고 의로운 재판관도 뇌물을 품는 순간 평가의 눈은 어둡게 되고 판결의 언어는 굽습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판결을 굽히려고 막대한 뇌물을 살포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잠17:23).

 

나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물질은 모두 뇌물의 성격이 있습니다.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는 물질을 우리는 기부라고 부릅니다. 동일한 물질이 뇌물도 되고 기부도 되는데 이는 물질의 최종 수혜자가 누구냐에 달린 것입니다. 밥을 제공하고, 돈을 주고, 선물을 주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면 무엇이든 뇌물 공여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뇌물의 유혹을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잠17:8). 뇌물에는 그 뇌물의 효능을 경험한 사람이 뇌물 없이는 살지 못하는 강력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뇌물을 아예 형통의 보루로 여깁니다.

 

뇌물로 인해 굽은 판결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을까요?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시58:1). 시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태도는 불의하고 불공정한 판결에 잠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머무는 모든 현장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적극적인 목소리의 자격자가 되려면 본인이 먼저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자여야 할 것입니다.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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