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화)


기다리지도 않는데 찾아온 사람들

-820호, 발행일 : 2014년 4월 9일(수)- 김천식박사의 역사 찾아 떠나는 여행 2.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이전에 이 땅에 찾아온 사람들, 즉…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19년 4월 24일

-820호, 발행일 : 2014년 4월 9일(수)-

김천식박사의 역사 찾아 떠나는 여행 2.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이전에 이 땅에 찾아온 사람들, 즉 우리의 요청이 아닌 그들의 선교 의지로 이 땅에 와서 성경을 전해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었으며, 감자를 심어 주었다.
그들이 바로 맥스웰과 바실 홀 그리고 귀츨라프이다. 특히 토마스 목사는 최초로 대동강 변에서 순교하였다.

사진설명: 하멜이 타고 온 스페르베르호 당시 좌초된 이 배는 제주도에 복원되어있다. 촬영: 김천식박사

정치적인 사건이었던 갑신정변이 이 땅 에 개신교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음을 지난 호에서 밝힌 바 있으므로 그 정변이후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 내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훨씬 이전부터 기독교의 이른 접촉이 있어 왔다. 우리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접촉이 시도되기도 하였고 때로 는 신앙에 모숨을 건 우리 선조들의 요구에 의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씨앗처럼 들어오 기도 하였다. 물론 당대에 뿌리를 내리지는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꽃나무의 결정체가 꽃이라 할 수 있지만, 꽃이 피기까지는 뿌리에서부터 줄기, 가지 잎사귀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식물학적 작 용이 이뤄진다. 꽃은 이러한 부단한 노력과 과정 끝에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한국의 기 독교(개신교)선교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에 의해 꽃을 피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 이전의 사람들이 있다. 비록 실패하고 빛을 보진 못했다하더라도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그들의 발자국을 좀 더 유심히 살 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너무 최신 것 에만 관심을 두고 조금이라도 오래 된 것은‘전설의 고향’ 에 나오는 얘기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 이 있다. 기독교 역사 저변에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여기는 하멜의 일도 까마득한 옛 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이도 지금으 로부터 불과 35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 틴의 행적은 700년이 넘는 오래된 일임에 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 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떤 가? 이는 2,400년 전의 일인데, 우리는 그 일을 전설 또는 가공의 얘기로 여기지 않는 다.
아무튼 한국기독교역사 상 기독교와의 접촉은 635년(唐太宗貞觀 9年)에 중국에 전래 된 경교(景敎)가 신라에 영향을 미쳤 을 것이라는 설이다. 이를 주장하는 학자는 이에 경주 석굴암의 부조와 1955년에 불 국사에서 발견된 돌 십자가(현재 서울 숭실 대기독교박물관 소장) 등으로 경교의 신라 전래를 실례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 학설 에 대해 이의가 제기 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임진왜란 당시 예 수회 소속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에 의해 접촉이 있었다. 그는 일본 주재 포르투갈 선교사로 있었는데, 한국 침 략을 획책한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임명한 소서행장(小西行長)의 요청에 의해 일본군 종군 신부로 1592년 12월 28일 우리나 라 웅천에 상륙한다. 그는 두 차례 걸쳐 우 리나라를 다녀갔는데, 小西行長이 천주교 신자였고 일본 군인들도 천주교 신자가 많 아 그들의 고해성사를 위해 세스페데스가 오게 되었다. 그는 일본 군인들을 위해 한 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포교활동은 하 지 않았지만, 일본군의 포로로 잡힌 한국인 들에게 전도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 다.
이후 1601년에 중국에 온 예수회 선교 사 마테오 리치가 북경에 들어와 포교활동 을 하면서 그의 해박한 서양지식을 활용하 여 세계지도, 기하원본(幾何原本), 천주실 의(The True Doctrine of the Lord of Heaven) 등 다양한 저술을 하였는데, 이는 당시 중국 明나라 관료들에게 상당한 호응 을 얻었다. 이로 인해 마테오 리치는 명나 라 조정의 신임 속에서 성공적인 선교활동 을 펼쳤다.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과학·종교 서적 및 역시 그가 제작한 지도들은 당시 조선국 왕이 보낸 사절단들이 접한 최초의 서양 문 물이 되었는데 이들이 귀국할 때 가져오기 도 하였다.
1603년 동지사(冬至使) 일행이 곤여만 국지도, 양의현람도 등의 지도를 가져 왔 고, 1610년에는 홍길동의 저자 허균이 천 주교의 교리서를 가지고 왔으며, 1636년 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 인질로 잡혀간 소현 세자가 북경에서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Adam Schall)과 만나 친분을 맺고 1645 년 귀국 때 천주교 교리서를 가져오는 등 천주교(기독교)와의 접촉이 있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백 여 년이 흐른 1783 년 동지사 일행으로 북경에 간 조선청년 이 승훈이 그곳에서 입교하여 그라몽(Gram­mont)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와 친 구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리를 가르치는 등 천주교 수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제 개신교 전파와 관련하여 볼 때 맥스 웰(Murray Maxwell)과 바실 홀(Basil Hall)을 떠올릴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영국 군함의 함장으로서 조선 서해안 해도 작성 의 임무를 가지고 항해 하던 중 1816년 9 월 4일 서해안 마량진에 정박하고 있었는 데, 이 때 이곳 관리인 조대복(馬梁鎭僉使) 에게 성서를 전달한 것이 한국 성서 전래의 효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직접‘어떻게 하면 조 선에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을까’하는 생 각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한 사람 들이 있었다. 선교를 목적으로 맨 먼저 이 땅을 밟은 사람이 독일사람 귀츨라프(Karl
F. A. Gutzlaff)이다. 기독교 역사학자들 은 귀츨라프는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지 목하고 있다.
그는 독일 포메라니아(Pomerania, 현 폴 란드)에서 태어나, 할레(Halle)에서 수학한 후 한때 네덜란드 선교회 소속으로 활동하 였다. 그는 최초의 중국 개신교 선교사로 있던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을 만나 선교 동역자로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귀츨라프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암헤르트 경호에 승선하였고 모리슨이 준 중국성경 을 가지고 1832년 7월 25일 충청도 서해 안 홍주만 고대도에 도착하였다. 귀츨라프 일행은 고대도의 지방 관리와 만나 국왕에 게 보내는 통상 개시 청원서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한양으로부터 오는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주민들과 접촉하면서 자연 스럽게 성경을 나눠주고 또한, 가지고 온 감자를 심어 주었다.
그들은 아무 탈 없이 자기네 나라로 돌아 갔지만, 영국 웨일즈 출신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목사는 이 땅에 피를 흘렸다. 토마스 목사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 다. 다만 그의 순교(1866년 9월 2일)가 한 국 선교를 가능케 한 하나님의 섭리 중 하 나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 에서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성서를 번역한 존 로스도 기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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