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 어린 시절(상)

[전주대 신문 제913호 13면, 발행일: 2021년 9월 29일(수)]   현장으로 보는 세계기독교 역사이야기41     기독교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에 로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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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 신문 제913호 13면, 발행일: 2021년 9월 29일(수)]

 

현장으로 보는 세계기독교 역사이야기41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 뒤의 동상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이고 광장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필자 촬영)

 

기독교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에 로마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있다. 그는 예수 승천 이후 2세기에 걸쳐 로마 황제들에 의해 자행된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풀어 주었고 기독교를 공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기독교인들의 고난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는 출생부터 흥미로운 얘기들이 전해온다. 그의 아버지인 콘스탄티우스는 305년 서로마 황제가 되었는데, 황제가 되기 전인 271년 지금의 세르비아 지역에서 전투를 하고 그곳 어느 시골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을 때 여관 주인의 딸인 헬레나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 헬레나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이다. 하룻밤을 묵은 젊은 장군은 전쟁터로 다시 떠났다. 그야말로 기약 없는 이별이었다. 수개월 후 헬레나는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를 본 따 ‘콘스탄티누스’라 지었다. 물론 헬레나는 장군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고 장군 역시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장군은 승진을 거듭하여 헬레나가 사는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어느 날 그의 장교가 헬레나와 콘스탄티누스가 살고 있는 여관에 갔다가 총독과 닮은 어린이를 보고 총독에게 보고 하였다. 그러자 총독은 모자를 데려 오도록 하였다. 당시 상황으로는 총독과 평민 여성의 결혼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신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우스는 헬레나를 아내로 대우하였고 콘스탄티우스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였다. 아무튼 얼마 동안 헬레나는 콘스탄티우스의 보살핌 속에서 생활 하게 되었으나, 이러한 행복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유는 콘스탄티우스가 부황제로 승진할 기회가 왔는데, 부황제가 되려면 정황제의 사위가 되어야 한다는 제국의 규정이 있었으므로 당시 서로마 황제인 막시미아누스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티우스는 부황제로 승진하였고 영국 주둔 로마군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영국으로 갈 때 십대 후반의 장성한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그게 여의치 않았다. 동방의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18세의 콘스탄티누스를 인질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따라가고자 했던 그에게 인질이라는 족쇄가 채워졌지만,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동방 황제 밑에서 군사적 정치적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김동주, 『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

 

▲캄피돌리오 광장 전경과 그 중앙에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말 탄 동상(필자 촬영)

 

김천식 박사(교회사)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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