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6.(월)


대각성운동 이후 이어진 미국교회 성장과 한국 선교

[전주대 신문 제900호 11면, 발행일 : 2020년 6월 3일(수)]   18세기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드, 무디 등 부흥사들에 의해 미국…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20년 6월 5일

[전주대 신문 제900호 11면, 발행일 : 2020년 6월 3일(수)]

 

18세기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드, 무디 등 부흥사들에 의해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부 흥운동이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각 교파로 하 여금 해외로 향하는 새로운 선교열을 태동되 게끔 하였다. 이에 1810년 미국회중교회외국 선교본부(The American Board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를 시 작으로 1814년에 침례교외국선교부가 조직 되었고 1832년에 감리교단과 1833년에는 각각 인도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해외선교는 미국 젊은 신학생들에게 도 영향을 미쳤다.

후일 한국선교와 관련이 되 는 외국선교자원학생촉기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과 면려청년회(勉勵靑年會:The Young People’s Society of Christian Endeavor) 등 학생들의 선교 운동이 19세 기 후반에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무렵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도 신학도로서 선교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실제로 1883년 10월 24-28일 코네티컷州 하드포 드에서 열린 신학교 연합회에 두 사람이 참석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해, 다른 각도에서 한국선교의 가능성 이 제기되는 일이 생겼다.

이는 다름 아닌 민 영익과 가우처 목사의 우연한 대면을 말한다. 미국은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자 푸 트(Lucius H. Foote)를 한국 주재 공사로 파견하였다.

이에 대한 답례로 고종이 전권대 사로 임명하였고 민영익은 홍영식, 서광범, 유 길준 등 12명의 사절단이 미국으로 가게 되는 데,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에서 볼티모어 감리 교회의 가우쳐(John F. Gaucher)목사를 만 나게 된다. 가우쳐목사는 옷차림이 특이한 일행을 보고 호기심에 말을 걸었고 민영익으로부터 한국의
상황을 듣게 되었으며, 한국선교의 가능성을 감지하였다. 그는 한국선교를 위한 모금운동 을 시작하였고 동시에 일본에 있는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 정부와 접촉하도록 제의하였다.

이에 맥클레이는 김옥균을 통해 고종에게 선교 의향을 전했다. 이어 1884년 7월에 맥클레이는 김옥균으로부터 ‘고종은 교육과 의료사업은 가능하다는 것을 구두로 윤허하였다’는 희망적인 사실을 전해 들었으나, 그해 12월에 갑신정변이 발생하였 다. 이 정치적인 사건으로 선교가 싹도 트기 전에 무산되는 듯 했다.

그런데 전화위복(轉禍 爲福)이라고 오히려 이 사건이 선교의 문이 열 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왜냐면, 갑신정변으로 자객의 칼에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민영익을 당시 의사의 신 분으로 와 있던 미국 선교사 알렌이 치료해준 덕분이었는데, 민영익은 앞서 말한 대로 미국 에서 가우쳐목사를 만난 인연이 있고 더더욱 민비의 조카인지라 그의 생명을 구한 것이고 종과 민비의 신임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것이 계기가 되어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당당 히 선교사 신분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종교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육 사업을 먼저 시작하여 배재학당, 경신학당, 이화학당을 세운 다음에 정동제일 감리교회, 새문안교회 등 한국 최초의 개신교 회를 설립하였다.

호남의 기독교 전래는 이러하다. 언더우드가 서울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다가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시카고의 맥코믹신학교에서 강연 을 하였다.

이 자리에 신학생 테이트가 참석하 여 언더우드에게 감동을 받고 한국 선교사로 갈 것을 결심하였다.

그 후 1892년 말에 7인 의 개척선교단으로 한국에 도착하고 바로 전 주에 와서 선교 거점지역 터를 닦았으며, 호남 지역 최초의 장로교회인 ‘서문교회’를 설립하 므로 전북을 위시하여 호남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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