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6.(월)


대학생의 독서법

[전주대 신문 제898호 11면, 발행일 : 2020년 4월 22일(수)]   대학생은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노동자다. 생각의 노동이 가장…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20년 4월 22일

[전주대 신문 제898호 11면, 발행일 : 2020년 4월 22일(수)]

 

대학생은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노동자다. 생각의 노동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 나는 현장은 책이라는 세상이다. 독서는 차원 을 넘나드는 훈련이다. 글쓰기는 3차원의 공 간과 4차원의 시간을 2차원의 지면으로 축소 하는 잉크의 예술이다. 저자는 사고가 어느 하 나의 차원에 고립되지 않고 다양한 차원을 출 입하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된다. 독서 는 글쓰기의 역순이다. 2차원의 지면에 압축 되어 있는 3차원과 4차원의 세계를 해독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독서는 차원 여행이며, 작은 세계를 큰 세계로 바꾸는 창조력을 발휘하는 훈련이다. 독서는 노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 보다 더 열심히 치열하게 일하는 전문적인 노 동이다. 그런 독서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1. 독서와 사색과 언술의 시간적인 비율은 50: 40: 10이 적당하다. 독서의 Input이 많 아야 하고 그것을 소화하는 사색의 분량도 그 에 비등해야 하나 언술의 Output은 그 십일 조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자 적 독서와 관념적 사색의 간접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몸으로 참여하는 삶의 독서와 고통 으로 읽어내는 사색의 직접성을 추구해야 한 다. 직접성을 취하는 최고의 독서는 사람 책 읽기이다. 이는 다양한 연령, 다양한 성별, 다 양한 직업, 다양한 직위, 다양한 지역,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만나 말과 생각을 섞어가며 대화하는 독서를 의미한다. 저자와 독자가 대 면하는 이런 독서는 글쓰기와 독서가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이다.

2.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단행본, 고전을 균형 있게 탐독한다. 일간지 즉 신문은 매일 터지는 일들의 실태를 파악하는 순발력을 길 러주고, 주간지는 사태와 약간의 거리를 두되 여전히 현장감 있는 관점을 제공하고, 월간지 는 가까운 원인들이 뒤엉킨 인과의 그물망을 그려주고, 단행본은 단일한 주제나 사태의 심 도 있는 분석과 규모 있는 이해를 제공하고, 고전은 수백 년의 긴 세월동안 축적된 검증의 역사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시대의 정신까 지 극복하게 한다. 이러한 독서법은 인간의 지 성을 골고루 개발하는 데에 유익하다.

3. 최대한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눈과 귀를 왜곡하고 판단을 병들게 하는 편협한 문 헌들을 분별해야 한다.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
고 다양한 입장과 관점으로 조명된 매체들을 균형 있게 읽는 게 필요하다. 나는 좌우의 매 체들을 10개씩 읽으려고 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극우와 극좌의 중간지점 혹은 평균치가 팩트에 도달하는 객관적 중도를 보 증하는 것은 아님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름 ‘ 합리적 중도’라는 표현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4. 성경만이 진리의 유일한 샘이라는 원리는 독서와 공부의 알파와 오메가다. 성경적 관점 은 마치 지구가 스스로를 관조하지 못하여 객 관적인 시야 확보를 위해 눈을 지구 밖으로 쏘 아 올린 인공위성 같다. 이는 성경이 왜곡과 오류와 편협의 본성적인 한계는 물론이고 지 구와 우주의 피조물적 한계까지 극복하는 객 관적 거리를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 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책이어서 특정한 집단의 이익이나, 특정한 정파의 이념이나, 특 정한 학파의 학설을 두둔하지 않은 가장 객관 적인 문헌이다. 모든 생각과 판단과 평가와 희 로와 애락과 행실과 선택이 전적으로 안심해 도 좋을 기준을 제공한다.

5. 독서를 하다가 떠오른 아무리 탁월하고 기발하고 독창적인 깨달음도 성경이 그은 진 리의 경계선 즉 사랑과 정의라는 금을 벗어나 면 경계함이 좋다. 그리고 진리가 인간의 상식 과 합리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과 마주친다. 그때 진리를 포기하지 않고 나의 상 식과 합리를 교정하는 태도는 독서와 공부의 아름다운 겸손이다. 성장기에 소유한 상식과 합리도 생물이다.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진리보다 나의 상식과 합리를 고집하면 나의 지성은 성장이 중단된다.

6. 독서가 넓지 못하면 거짓과 속임수를 분 별하지 못하고 사유가 깊지 못하면 타인이 생 산한 생각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필 연이다. 비록 육체가 결박되는 방식은 아니라 할지라도 생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 피한 수순이다. 가장 자유롭다 하면서도 결국 타인의 지적 배설물을 편들면서 살아가는 인 생에서 벗어나라. 그러려면 내가 내 지성의 주 인이 되는 연습이 필요하다. 길들여진 사색, 주입된 정보, 강요된 판단에 무릎 꿇지 않은 지성의 자율성을 회복하라.

7. 그러나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어 떠한 속박도 불허한다.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 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는데 그 자유가 교묘 한 방식으로 유린되고 착취되는 건 기독교의 정신에 위배된다. 타인의 사유를 지배하고 조 작하는 건 인간의 존엄한 자유를 유린하는 가 장 은밀하고 간사한 방식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체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면서 자아의 노예 라는 늪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8. 독서와 공부는 진리가 이미 제공했고 지 금도 수혈하고 있는 자유를 수호하고 보존하 고 공유하고 퍼뜨리는 몸부림을 의미한다. 책 의 텍스트에 매몰되지 않고 책의 저자에게 무 조건 굴복하지 않고 대등한 지성인의 자격으 로 저자와 독자가 대화하는 듯한 자유로운 독 서를 시도하라.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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