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3.(목)


독자투고_불쾌한 온도

By 전주대학교 대학신문사 , in 신앙과 선교 , at 2022년 10월 26일

[전주대 신문 제924호 11면, 발행일: 2022년 10월 26일(수)]

몸이 가라앉고 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불쾌한 온도가, 날 더욱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첫 물줄기를 맞았을 때는 그저 지나가는 여우비라 생각했다. 지금껏 그래왔듯 큰 걱정 없이 날이 밝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 물줄기를 맞았을 때는 생각보다 굵은 물방울에 조금 놀랐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산을 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간간이 우산을 들고 온 지인을 만나거나, 불 켜진 건물로 들어가 물줄기를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도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목적지를 향해 느린 걸음으로 움직였다.

 

여우비가 바닥에 닿기를 몇 번, 이윽고 먼지를 타고 흙 내음이 퍼지기 시작하니 곧 세찬 비가 쏟아졌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갈 길을 향해 달렸다. 비가 머리를 타고 옷에서 신발까지. 한 번 젖기 시작한 옷은 더 빠르게 물들어 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따금 날아드는 바람은 젖은 옷과 만나 몸이 떨리는 한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이 비와 추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수십 년째. 이제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싶다. 생각보다 많은 결심과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것을 막아서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우산을 들고 올 지인이나, 불 켜진 안식처가 없으니까. 갈 곳을 잃은 걸음은 제자리에 멈췄다. 멈춰있으니 체온으로 덥혀진 옷이 한기를 막아주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불쾌한 온도. 그런 비에 잡아먹혀 가라앉고 있었다.

 

김지훈 학우(한식조리학과 2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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