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의 위기 속에서
[전주대 신문 제922호 13면, 발행일: 2022년 08월 31일(수)]
‘사흘’, ‘금일’, ‘무운’에 이어 최근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화두에 올랐다. ‘사흘’을 ‘4일’로 이해하고,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고, ‘전쟁 따위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를 뜻하는 ‘무운(武運)’을 ‘운이 없음’을 뜻하는 ‘무운(無運)’으로 이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심지어 ‘심심(甚深)한 사과’라는 표현을 ‘매우 깊고 간절한 사과’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사과’로 받아들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익명의 네티즌들뿐만 아니라 보도전문채널 정치부 기자의 문해력도 이 정도 수준이니 이쯤 되면 가히 ‘문해력의 위기’라고 할 만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문해력’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매체가 다양화된 요즘 시대의 상황에 맞게 문해력의 범위를 확장한다면 단순히 ‘글’뿐만이 아니라 ‘대화’, ‘영상’, ‘콘텐츠’ 등까지 포함하게 될 것이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한 모든 언어 수단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의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글로 된 책을 읽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영상 매체를 시청할 때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대학에서 문해력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학습자가 일정 수준의 문해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전문 분야의 고급 지식을 다루는 대학 수업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교수자들이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형편없다고 탄식한다. 하지만 문해력 저하의 책임을 학생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성세대 교수자들이 낡고 고루한 어휘와 표현을 사용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학생들은 신조어나 밈(meme)을 전혀 알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디지털 시대의 문맹(文盲)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문해력의 위기를 헤쳐 나갈 책임은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모두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문해력 저하의 원인은 단순히 몇 가지로 손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는 목소리도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문해력 저하의 원인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이를 미시적인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세대 사이의 소통과 상호 이해에 있다고 본다. 기성세대는 기술 발전과 함께 성큼 다가온 매체 환경의 변화를 인정하고, 이를 함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래세대 역시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학습 방법과 배경지식에 관심을 가지고 따라갈 필요가 있다. 소통을 위한 서로 간의 노력이 이어질 때 문해력의 위기를 극복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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