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6.(월)


미국 대각성운동의 마지막 주자 무디(Moody) 부흥사

[전주대 신문 제898호 11면, 발행일 : 2020년 4월 22일(수)]   미국 대각성운동에서 조지 휫필드와 조나단 에드워드를 꼽고 있다. 그러나 또…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20년 4월 22일

[전주대 신문 제898호 11면, 발행일 : 2020년 4월 22일(수)]

 

미국 대각성운동에서 조지 휫필드와 조나단 에드워드를 꼽고 있다. 그러나 또 한 사람 미 국 대각성운동의 마지막 주자인 부흥사 무디(Dwight Lyman Moody)를 떠올릴 수 있다.

그가 사역한 곳이 시카고이다. 시카고는 1920년대 당시 암흑기에 악명을 떨쳤던 갱 두목 알 카포네로 유명하고 현재는 존 행콕 센 터, 마리나 시티, 제임스 톰슨 센터 등 초고층 빌딩으로 이름나 있다. 시어스 타워(Sears Tower)는 110층으로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 이트 빌딩(102층)보다 더 높다. 그래서 시카 고에서는 최소한 70층 이상이 되어야 고층 빌 딩이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보다는 부흥사 무디를 얘기하고자 한다.

학력도 없는 무명의 시골 출신 인 그가 쇠잔해져 가는 대각성운동의 잔불을 다시 피운 사실이 더 중요하고 흥미롭다. 또 한, 시카고는 호남의 처음 교회인  전주서문교 회를 설립한 테이트(Lewis Boyd Tate 한국 명 : 최의덕) 선교사가 신학 공부를 했고 한국 선교를 결심한 곳이라는 점에서 시카고를 남 달리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무디는 다른 부흥사들과는 다른 경 력을 가지고 있다. 앞서 대각성운동을 주도 했 던 조지 휫필드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 고 조나단 에드워드는 미국의 명문 예일 대학 출신 등 대부분의 부흥사들은 고학력 소지자 들이었다.

그러나 무디는 1837년 뉴잉글런드의 작은 농촌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 어났고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이다. 어린 시절 시카고로 온 무디는 구두 수선공 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일약 부호가 됐다.

하지만 무디는 금전에 목적 을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포기하면 서 YWCA에서 열심히 활동하기도 했다. 한편 으로는 시카고의 빈민가에 사는 불우한 환경 의 소년들과 소녀들을 위해 주일학교를 설립 하고 기독교 문서 선교, 미시간 호수 주변의 지역에서 기독교 사업을 확장하는 일에 적극 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던 중 1873년 찬양 인도자 생키(Ira Sankey)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생키와 함께 영국 설교 여행을 하면서 집회를 인도하였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고 이에 힘을 얻어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 요청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설교를 했다. 그러자 초기 대각성운동 때와 비슷한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비록 학력이 부족한 무디였지만, 구원의 필 요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청중들을 이해 시켰다. 여기에 생키의 찬양이 청중들을 은혜 속으로 이끌어 가는 데 일조했다. 그가 지은 찬송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 다.(214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290 장)’ 그리고 297장, 357장 등이 우리의 찬송 가에 수록되어 있어서 그 찬송들을 통해 당시 의 은혜를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시카고에 가면 무디 신학교와 성서연 구소, 박물관 등이 있어서 생생하게 무디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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