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화)


바벨의 도전(1): 다문화사회와 멀티링구얼

-831호, 발행일 : 2014년 11월 26일(수)-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따르면 바벨(Babel)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혼란시켜 제각기 다른 말을 쓰도록 한 장소로 알려져…

By editor , in 오피니언 , at 2019년 5월 24일

-831호, 발행일 : 2014년 11월 26일(수)-

박강훈 교수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따르면 바벨(Babel)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혼란시켜 제각기 다른 말을 쓰도록 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높고 거대한 바벨탑을 쌓아 하늘까지 올라오려는 인간의 욕심에 하나님께서 분노해서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여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말이 안통하게 했고, 이것을 계기로 지상의 모든민족은 각기 다른 언어를 쓰게 되었다는 극적인 일화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지구상에는 몇 개의 언어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세계 언어 백과사전인‘에스놀로그(Ethnologue)’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는 6,900개 정도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아마도 독자 분들은 이 숫자를 보고 짐짓 놀랐으리라 생각된다.

필자도 상기 백과사전을 찾기 전만 해도 약350개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네팔과 같은 작은 국가의 경우만 하더라도 12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고 있으며, 파푸아뉴기니는 840개 이상의 언어가, 그리고 호주도 원주민의 희귀언어 등을 모두 넣으면 27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하니 6,900개라고 하는 숫자가 그리 무리도 아니겠다고 납득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 혹은 일본과 같이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소위 모노링구얼(monolingual) 국가는 세계에서 약 30%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소수파에 속한다고 한다.

지금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도 이렇게나 힘든데, 한 국가내에서 서로 다른 방언 등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면 그 불편은 이만 저만이 아닐것이다. 필자가 1999년도에 일본 동경의 일본어학교에 다녔을 때의 일화다. 당시 필자의 클래스에는 각기 다른 국적의 외국인이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같은 중국인 유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하던 그룹이 있다. 어느 날 필자가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한 친구는 북경 출신이요, 또 한 친구는 상하이 출신 그리고 나머지 한 친구는 홍콩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내에서 위의 세 지역은 서로 언어가 완전히 다른 방언체계를 갖고 있어 표준어인 북경어를 모른다면 위와 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중국도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모노링구얼 국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필자는 귀중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울러 다시 한 번 모노링구얼 국가로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러나 모노링구얼 국가로 대표되었던 한국이나 일본 등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글로벌 시대로의 진입에 따른 다문화사회로의 탈바꿈 때문이다.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에 있어 기존과 달라질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문자 그대로‘모노컬처(monocultural)에서 멀티컬처(multicultural)’ 로,‘모노링구얼(monolingual)에서 멀티링구얼(multilingual)’로의 탈바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노컬처·모노링구얼’에서‘멀티컬처·멀티링구얼’로의 이행과정에 있어 현재 여러 가지 진통을 겪고 있다. 필자의 전공은 언어학(linguistics)이므로, 언어분야에 초점을 맞춰 기술하자면 일단 우리는 상대방의 언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상대방이 한국어를 빨리 배워서 우리와 한국어로만 의사소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그야말로 다문화공생 실현을 위해서는 상호 이해와 상호공존이 선행되어야 할 텐데, 우리는 우리것을 먼저 강조해 우리 쪽으로 동화되기를 원하는 소위 동화주의(同化主義)가 팽배해 있다.

약 50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 우리는 ‘모노컬처·모노링구얼’이 우리 민족의 자랑이었고 또한 자부심이었다. 아무리 시대적 요구가 있다고 해서 이것을 단기간에 ‘멀티컬처·멀티링구얼’로 바꾸기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르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이제는 우리에게 다문화사회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다음 호 칼럼에서는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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