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9.(토)


백제 무왕의 왕사 미륵사지를 찾아

[전주대 신문 제902호 7면, 발행일 : 2020년 9월 9일(수)]   ■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미륵사지(彌勒寺址)는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산 남쪽…

By editor , in 문화 , at 2020년 9월 10일

[전주대 신문 제902호 7면, 발행일 : 2020년 9월 9일(수)]

 

■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미륵사지(彌勒寺址)는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왕이 축조한 동양 최대의 사찰로 알려져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1탑 1금당의 3원 형식임이 밝혀졌고, 각종 기와, 토기, 청자, 금속, 목재 등 다양한 유물이출토되었다. 미륵사지는 동·서로 석탑이 있고 중간에 목탑이 있으며, 탑 뒤에는 부처를모시는 금당이 각각 자리하는 구조로, 이들탑과 금당을 한 단위로 구분하는 회랑이 있는 매우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은 미륵사지의 서측의 금당앞에 서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가장 오래된 탑임과 동시에 가장 큰 규모의탑이다.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과정을 충실히 보여주는 한국 석탑의 시원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석탑의 높이는 14.4m이며, 북동쪽을 중심으로 절반 정도만 남아있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기단부와 탑신부가 남아있으나 많은부분이 훼손되어 6층까지만 남아있다. 기단부는 2중 기단으로 되어 있으며, 6층까지의탑신은 각 부분을 수 매의 돌로 짜 맞추어 마치 목조건축의 결구를 연상시킨다. 1층 탑신은 초석을 놓고 민흘림(엔타시스)이 뚜렷한기둥으로 각 면 3칸을 나누었는데, 목조건축과 같이 그 내부를 벽체처럼 구성하였다. 1층 기둥 위에도 목조건축에서 기둥을 연결하는 방식을 채택하였으며, 그 위에 공포에 해당하는 3단의 옥개 받침을 두어 옥개석을 받치게 하였다.

■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 제1991호
미륵사지 석탑 해체·수리 중이던 2009년 심주석의 사리공에서 금동제 사리외호,금제 사리내호, 금제 사리봉영기, 각종 구슬및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 등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 사리봉영기에서는 639년(무왕 40)이란 연대와 봉안 주체가 확인되었다. 이들출토유물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는데 크게일조하였다.

사리외호 및 사리내호는 동체의 허리부분을 돌려서 열 수 있는 구조이며, 이러한 구조는 동아시아 사리기에서 유례를 볼 수 없는독특한 것이다. 사리봉영기에는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간 『삼국유사』를 통해전해진 선화공주나 미륵사의 창건설화와는다른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하여 제작한 것으로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절대적인 사료이다. 또한 백제 금속공예의 기술수준을 증명해주는 자료로 학술적, 예술적인가치가 매우 높다.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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