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8.(목)


사형제 존폐 YES or NO

[전주대 신문 제917호 08면, 발행일: 2022년 03월 02일(수)] 사회적인 문제부터 흥미로운 논쟁거리까지, 찬성과 반대를 나누어 두 명의 기자가 치열한 공방을…

By editor , in 기획 , at 2022년 3월 3일

[전주대 신문 제917호 08면, 발행일: 2022년 03월 02일(수)]

사회적인 문제부터 흥미로운 논쟁거리까지, 찬성과 반대를 나누어 두 명의 기자가 치열한 공방을 벌입니다. 이 기사를 읽은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실 건가요?

 

사형제는 사회를 위한 필요악

최근 공주교도소에서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20대 남성이 교도소 내에서 또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법조계에서는 공주교도소 살인사건으로 이번 대선에서 사형제 존폐 논쟁이 촉발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외에도 ‘고유정 사건‘, ’제주 중학생 피살사건‘ 등 흉악한 범죄로 사형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형법 41조에서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 이후 현재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를 근거로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사형폐지국가는 아니므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는 언제라도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 합당한 형벌이 필요하다. 형벌은 교화의 목적만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큰 목적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 과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흉악한 범죄자라도 그들의 인권을 지켜주어야 하고, 사람의 생명을 국가가 빼앗아 갈 권리가 없다고 한다. 헌법 제 10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국가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등의 악질적인 사람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운운하는 것은 인권이라는 측면에서도 모순이다.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포기한 범죄자의 인권을 세상이 정의하고 있는 인권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반인륜적인 범죄자에 대한 사형선고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책무이다. 또, 남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도 본인의 생명만은 유지된다는 논리로 합리화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국가는 범죄자의 생명을 논하기 전에 무고한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범죄자 중에서 반성은커녕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재미로 생각하고 잡히더라도 교도소에서 살면 된다는 식으로 가볍게 넘기는 범죄자가 있다.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범죄자들은 교화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형제도를 살려 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어 재범률을 낮추고 사회적 격리로 강력범죄를 예방해야 한다. 모든 범죄자에게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사회격리가 필요하고 죄질이 나쁜 극악무도한 범죄자에만 조처해야 한다. 사형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흉악범을 격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처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세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극악범죄를 저질러 모든 국민에게 충격을 준 피고인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여 평생 참회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가석방되어서는 안 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선고 실효성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점을 고려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고 말했다. 사형 대신 무기징역 선고를 받게 되면 흉악한 범죄자에게 교도소라는 피난처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20년 뒤에는 가석방 심사 기회까지 주는 셈이다. 감형이 없는 무기징역이라고 하여도 그들은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우리와 같이 먹고, 자고, 입으며 생활한다. 나라를 위해 낸 돈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범죄자들을 살아가게 하는 데에 쏟아지고 있다. 최저생계비도 벌기 어려워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국민의 세금이 쓰이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살아있는 한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무조건 사형제 폐지를 논하기보다 사형에 대한 법제를 정비하고 조정해가야 한다. 그들을 사회에서 도태시키는 방법으로 사형제는 있어야 할 필요악이다.

 

사형제는 감당할 수 없는 흔적

2020년 12월 17일, 화성 8차 사건 재심 최종 선고 공판이 열렸다. 1988년 9월에 발생한‘이춘재 연쇄살인사건’중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됐던 윤성여 씨의 누명이 풀리던 날이었다. 8차 사건 당시 범행 장소였던 피해자의 방에선 범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체모 몇 점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체모 분석을 의뢰했고, 며칠 뒤 범인의 혈액형이 ‘B형’이란 결과가 나왔다. 이를 앞선 일곱 번의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연관 지은 경찰은 화성 일대에 사는 B형 남자를 모두 용의선상에 올렸다. 억울하게 잡힌 윤 씨도 그중 하나였다. 윤 씨가 잡힌 이유는 범인과 같은 B형 남자이자, 범인과 같은 성분의 체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4년 만에 잡힌 진범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이 당시 윤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20년이 되어서야 20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끝냈다.

이춘재는 총 10차례에 걸쳐 화성 일대의 부녀자 10명을 살해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반면, 윤성여 씨는 창창한 미래를 꿈꾸던 22살 농기계 수리공이었다. 경찰의 잘못된 수사와 법원의 오판으로 한 청년의 20년이 사라진 셈이었다. 만약, 이 재판에서 무기징역이 아닌 사형이 선고돼 실제 집행됐다면, 사건의 진실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범죄를 저질러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무너뜨린 이들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윤성여 씨와 같은 사람이 법원의 오판으로 인해 누명을 벗지 못하고 사형당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다면, 과연 이 사회는 사람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보호해줄 자격이 있을까?

“한 번은 사형수의 목에 밧줄 올가미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포인트를 당기는 바람에 사형수가 콘크리트 바닥에 그래도 추락했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비명을 지르는 사형수를 다시 끌어올려 목에 올가미를 걸었지. 그 짓을 하는 교도관들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제정신이 아닌 거지.” 이는 1952년부터 1971년까지 19년 동안 사형수 담당 교도관으로 근무하면서 200명이 넘는 사형수의 죽음 지켜본 한 교도관의 인터뷰다.

사형은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 사람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제거하는 형벌이다. 그리고 그 사형은 교도관에 의해서 집행된다. 사형수가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교도관이 자신의 손으로 사형을 집행하고, 사형수가 죽어가는 그 순간을 지켜보는 것은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한 현직 교도관은 “명령이었지만 ‘범죄자를 단죄한다’는 일종의 정의감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집행 기억이 선명해지면서 삶에 대한 회한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집행에 참여한 교도관 중 일부는 이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심하게는 마약까지 손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형은 흔적은 남긴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귀중한 삶을 가져가고 억울한 삶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억울한 삶을 앗아간 사회에게는 무고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 책임과 그에 대한 비판의 흔적을 남긴다. 사형을 집행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밀려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의 흔적을 남긴다.

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형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범죄자는 그 형벌로 인해 교화되고 자신의 죄를 책임져야 하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그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형벌의 역할이다. 사회는 범죄자로부터 무고한 시민을 책임져야 하며, 이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보호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의 역할이다.

그러나 사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로 인해 형벌이 무고한 시민을 향해 올가미를 조인다면 형벌은 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범죄자들에게 죄에 대한 무게를 알려주기 위해 사형을 집행하는 자들에게 타인의 죽음을 감당하게 하는 것은 사회가 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글: 진주현 기자(jjh8222@jj.ac.kr), 최혜림 기자(chr9460@jj.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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