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7.(월)


삶을 위한 죽음의 이해

[전주대 신문 제905호 11면, 발행일 : 2020년 12월 2일(수)]   현대인이 선망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랜 산 사람은 누구인가? 공식적인 기록에…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20년 12월 2일

[전주대 신문 제905호 11면, 발행일 : 2020년 12월 2일(수)]

 

현대인이 선망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랜 산 사람은 누구인가? 공식적인 기록에 따라 출생과 사망의 시기가 입증된 최장수의 인물은 프랑스의 잔 깔망(Leanne L. Calment, 1875-1997)이다. 그러나 국가의 행정처리 능력이 미비한 시대에 공식적인 자료로는 증명되지 않았으나 장수한 인물들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중국의 리칭위안(李慶遠)이다. 1933년 5월 6일자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신문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1677년에 태어나 1933년에 사망하여 256세까지 산 인물이다. 그가 후손에게 남긴 장수의 비결은 이러하다. “인체는 삼통, 즉 혈통, 뇨통, 변통 등을 유지해야 한다…평온한 마음자세 유지하며 거북처럼 앉고, 새처럼 움직이고, 개처럼 잔다.” 동시에 그는 채식을 오랫동안 즐겼으며 평온하고 낙관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졌으며 연잎과 결명자와 구기자를 차로 마셨다고 한다. 그가 평소에 강조한 것은 인자와 자애를 의미하는 자(慈), 절약과 절제를 의미한 검(儉), 화목과 조화를 의미하는 화(和), 안정과 평안을 의미하는 정(靜)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한 사람도 결국에는 사망한다.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가 무덤으로 들어갔고, 지금 생존해 있고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도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는 무덤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모든 사람에게 일종의 평등과 공평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모든 기쁨도 죽음과 함께 소멸된다. 빈과 부도 함께 무덤으로 들어간다. 명예와 불명예도 무덤으로 들어간다. 이 땅에서는 긍지의 빳빳한 명함을 내밀던 지혜와 지식과 명예와 지위와 업적과 인기와 재물도 무덤 앞에서는 무기력한 먼지처럼 가볍게 날아간다.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부하고,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유명하고, 아무리 지혜롭고, 아무리 의롭고,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정의롭고, 아무리 똑똑해도 죽으면 그 모든 것들이 거품처럼 사라진다.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의 겉옷은 호흡과의 결별이다. 그러나 죽음의 실체는 그것보다 심오하다. 동양의 공자는 자신의 제자 계로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논어에서 이렇게 답하였다. “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 즉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공자는 정직하다. 죽음의 세계는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어서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 세계에 대해 증언해 줄 목격자가 없다. 서양의 철학자들 중에 하이데거는 죽음을 모든 불가능한 것들이 끝나고 모든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자유의 사건이라 한다. 아마도 이것은 그리스 철학의 대부와 같은 소크라테스의 죽음관을 차용한 듯한 표현이다. 그에게 몸은 영혼의 감옥이고 죽음은 영혼이 몸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는 죽음을 모든 가능성의 종식이고, 모든 자유의 박탈이고, 모든 힘의 종결로 이해한다. 나는 죽음을 이 세상의 출구이며 동시에 새로운 세상의 입구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 과의 결별이고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다. 죽음은 존재의 끝과 소멸이 아니라 분리이다. 모든 사람이 맞이하는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이다. 육체는 부패하여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영혼은 소멸이나 변경 없이 동일한 영혼으로 존재한다. 그 영혼은 죽음 이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세계가 나는 궁금하다. 그러나 나도 죽음이 두렵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소원한다.

만약에 우리가 하루 정도를 산다면 하나님께 구하고 싶은 우리의 소원은 무엇인가? 솔로몬의 경우, 하나님은 그에게 원하는 것을 물으셨다. 이에 솔로몬은 백성을 잘 섬기기 위하여 모든 사안에 대하여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섬기는 왕의 지혜를 구한 것에 대해 하늘의 칭찬을 그에게 쏟으셨다(대하1:11). 장수도 후순위로 밀어내는 솔로몬의 가치관에 하나님의 칭찬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영원한 것 구하기를 원하신다. 장수에 있어서도 이 땅에서의 상대적인 수명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장수 구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생명을 구하면 “영원한 장수”를 주신다고 시인은 확신한다(시21:4). 모세는 심지어 하나님 자신을 “너의 날들의 길이” 즉 우리의 “장수”라고 명명한다(신30:20).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도 인생의 가치를 생존의 길이에 두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거하는 것이 자신에게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빌1:23). 그런데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다. 그에게 인생의 사명은 이웃에게 최고의 사랑을 나눔이다. 영원한 장수를 주는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바울은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영원한 장수를 소유한 사람은 이 땅에서의 자기 생명을 섬김의 수단이요 사랑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관은 오직 죽음 앞에서만 형성된다. 타인의 생명을 도구로 여기는 것은 올바르지 않지만 자신의 생명을 그렇게 여기는 것은 아름다운 희생이다.

한병수 목사(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조교수/대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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