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3.(수)


순국 선열들의 뜨거운 조국애 체험

858호, 발행일 : 2017년 11월 2일(수) 사관후보생 오예준 (가정교육과 4학년) 지난 9월 8일부터 12일까지 4박5일간 우리 전주대학교 학군단 4학년 후보생(ROTC…

By jjnewspaper , in 사람들 , at 2019년 7월 10일

858호, 발행일 : 2017년 11월 2일(수)


사관후보생 오예준
(가정교육과 4학년)

지난 9월 8일부터 12일까지 4박5일간 우리 전주대학교 학군단 4학년 후보생(ROTC 55기)들은 대학의 지원을 통해『선열들의 항일 독립유적지를 가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중국으로 해외 전·사적지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100년 만에 찾아온 올여름 무더위 속에서 4주간 혹독한 하계입영훈련을 마치고 난 후 해외탐방이어서 더욱 의미있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2013년부터 우리 학군단은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장교후보생으로서 조국애 함양과, 국가관 확립을 갖추기 위해 3학년은 제주도 한라산을, 4학년은 중국으로 백두산 일대를 탐방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북한의 테러위협 및 북·중 국경지대의 치안불안 등의 이유로 백두산 일대 탐방은 하지 못하고 하얼빈~상해~항주를 잇는 선열들의 독립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안중근 장군 의거와 일본만행의 현장인 731부대가 주둔했던 하얼빈을 방문하는 것에 큰 기대가 되었습니다.

■ 첫 번째 방문지 하얼빈
하얼빈은 중국 북방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겨울추위가 아주 매서운 대륙성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 남하정책을 추진하던 러시아군이 오래 주둔 하여 영향을 받아 음식과 건물들이 러시아풍을 띄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우리에게 마루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가 1940~45년까지 약 5년간 생체실험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 지역입니다.

관련 기념관을 둘러보니 하루빨리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역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여 피해국가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아픈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민족의 영웅이자 동양평화론을 창시한 위대한 사상가 안중근 장군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기념관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잘 정돈되어져 있었고, 중국정부가 타국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기념해준 것을 보면서, 안중근 장군이 대한민국만의 영웅
이 아닌 동양의 영웅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관람하는 내내 순국하신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차마 영정 앞에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같이 동행하신 행정실장님은 장군의 영정 앞에 절을 하시고 차마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저의 마음이 더욱 아팠으며, 같이 간 우리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특히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라고 모친인 조마리아 여사의 마지막 서신은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아들 보아라 네가 사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선의 2천 동포를 대신하여 의로운 일을 행하고 받은 형이니 항소하지 말고 받아 들이거라 행여 늙은 어미를 대신하여 먼저 세상을 떠난다고 마음 아파하다면 이 어미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니 그런 마음은 버리고 어미가 지어준 옷을 입고 기쁜 마음으로 저 세상으로 가거라!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세상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죽으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장군에게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 두 번째 방문지 상해

그림 (상해임시정부에서..)

2, 3일차는 중국의 세계적인 국제도시인 상해를 방문하였습니다. 상해는 일제강점기 최초로 임시정부가 세워진 곳입니다. 청사를 둘러보니 그래도 명색이 망국이기는 하였지만 일국의 정부인데 터가 허름하여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지역에서 끼니도 거르면서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헌신하셨을 선열들을 생각하니 내가 입고 온 좋은 옷, 먹고 마시는 것조차 부끄러웠습니다. 상해는 국제도시답게 국제금융센터 및 무역의 중심지이었습니다. 특히 동방명주 일대의 고층건물들은 세계를 호령하던 중국이 다시 한 번 용트림을 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새로운 도약을 다시 한번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피부에 확 와 닿았습니다. 독립유적으로는 윤봉길 의사가 폭탄의거를 한 홍커우 공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의거 당시 나이 26세의 젊은이가 자신의 처자식을 뒤로한 채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독립을 갈망한 그 헌신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윤군은 나와 의거 당일 아침을 같이 들게 되었는데 나는 밥이 차마 목에서 넘어가지 않는데 윤군은 마치 새벽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드는 농부처럼 많은 양의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나에게도 권하는데 오늘 죽으러 갈 사람이 저리 평화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윤군은 내게 ‘저의 시계는 5원짜리 이고 선생님의 시계는 3원짜리이니 바꾸시죠’ 하자 나는 ‘자네의 시계가 더 좋으니 가지고 가라’고 하였지만 윤군은 ‘저는 이제 3시간만 있으면 필요가 없으니 바꾸시죠’ 하며 끝내 바꾸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윤군! 지하에서 다시 만나세!’ 라는 말을 하고 배웅을 하였다. 백범일지에 기록되어진 의거 당일 김구 선생과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일화를 보며 ‘나는 여지껏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라는 자문이 들면서 역시 큰 그릇을 가진 분들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이후 중국의 장제스는 100만 중국대군이 하지 못할 일을 조선의 한 젊은이가 해냈다며 임시정부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였다고 하니 그 당시 윤의사가 해낸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금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 세 번째 방문지 항주


항주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요즘 가장 핫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세계 최고 전자 상거래 그룹인 마윈 회장의 ‘알리바마’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최근 G20회의가 개최되는 등 그 명성이 자자한 지역입니다. 명성답게 항주는 깨끗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었습니다.‘중국 내 단일 도시 중에 부자가 가장 많은 도시’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허풍은 아닌 듯 했습니다.
항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역사에 있어 의미 있는 곳인데, 윤봉길 의사의 의거이후 일본 군·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임시정부는 일본을 피해 항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난징, 충칭 등을 거쳐 이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경로만 보더라도 임시정부 요인들의 피곤함과 고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마치면서
이번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습니다. “내가 일제강점기에 안중근 장군, 윤봉길 의사였다면 그 분들처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나의 모든 것(목숨, 사랑하는 가족, 행복 등)을 희생할 수 있을까?”질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며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고, 다시 한 번 애국지사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함이 밀려왔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육군장교로, 곧 임관을 앞둔 사관후보생으로서 안중근 장군이 옥중에서 쓰신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란 글은 대한민국의 국민, 그리고 군인으로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상기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이런 좋은 기회를 갖게 해주신 이호인총장님과 우리 대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에 감사드리며, 전주대학교가 나의 자랑이듯, 나 또한 전주대학교의 자랑이 되어야겠습니다!.

사관후보생 오예준(가정교육과 4학년)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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