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3.(목)


쉽게 읽는 성경 ➀ ‘주기도문’의 모든 것

By 전주대학교 대학신문사 , in 신앙과 선교 , at 2023년 3월 14일

[전주대 신문 제927호 11면, 발행일: 2023년 3월 8일(수)]

 

조재천(선교신학대학원 조교수)

 

기독교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신(하나님)에게 바치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의 기도’ 또는 ‘주기도문’이라고 불리는 기도입니다. 기도교인들이 ‘주’(主)로 모시는 나사렛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라고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양에서는 그 기도의 첫 두 단어인 ‘우리 아버지’를 제목처럼 쓰기도 합니다.

주기도문은 신약성서 마태복음 6장 9-13절에 나오고 누가복음 11장 2-4절에도 나옵니다. 둘 중 더 긴, 마태복음의 것이 기독교 예전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마태와 누가의 버전 사이에 제일 큰 차이는 아마 마태복음 기도문 끝에 붙은 송영일 겁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당신께 영원히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필사본들과 다른 정황을 종합적으로 볼 때 이 마지막 문장이 원래 마태복음에 없었다고 봅니다, 역대상 29장 11절을 기반으로 기독교인들이 예배의식에 이 기도를 사용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의 특이한 점은 11장 2절에 나타납니다. 익히 알려진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대신 고대 어떤 사본에 “당신의 거룩한 영이 우리에게 내려와서 우리를 정결케 하소서”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의 내용을 살펴볼까요. 마태복음 판 주기도문에는 모두 일곱 개의 청원이 들어 있습니다. 앞의 셋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내용이고 뒤의 넷은 사람의 주요한 물질적, 영적 필요를 채워달라는 내용입니다. 다만, 매일의 양식을 청하는 네 번째 청원에서, 그리스어 단어 ‘에피우시오스’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불명확합니다. 대부분 역본에서 ‘필요한’, 또는 ‘일용할'(daily)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이 단어의 어원이나 쓰임새를 살펴보면, ‘존재를 위한’, ‘내일을 위한’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네번째 청원은 물질적 필요가 아닌 영적 필요를 구하는 것이 될 겁니다.

ᅠ 우리말 주기도문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스어 원문과 다른 외국어 번역에 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직접 2인칭으로 지칭합니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2인칭대명사 존칭이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는 그것을 아예 번역하지 않거나, ‘주’ 또는 ‘아버지’로 바꾸어 번역을 했습니다. 직접 한 번 볼까요. 개신교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버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위 기도문은 1956년 판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의 마태복음에 나오니까 칠십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한 시대에 맞는 우리말 어법과 정확한 성경원문을 반영해서 주기도문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2004년 62명의 신학자가 참여해서 ‘새 주기도문’을 만들었고 일부 교회가 그것을 채택했습니다. 2004년 판 새 주기도문은 아래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우리말 기도문의 특이점 한 가지를 더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 복음서 모두 우리의 ‘죄’ 용서를 구하고 있고, 이 때 원문의 그리스어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빚, 채무’입니다. ‘죄 지은 자’, ‘잘못한 사람’의 원래 의미도 ‘빚진 사람, 채무자’입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하나님께 진 ‘빚’을 ‘죄’로 해석할 수 있긴 하지만, 어쨌든 원문의 뜻은 일차적으로 ‘죄’가 아니라 ‘빚’이 맞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가 교회에게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이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에 걸쳐 가장 거룩한 기도로 여겨져 왔습니다. 3세기 교부 떼르뚤리아누스는 주기도문을 ‘모든 복음의 요체’라고 했고, 5세기 아우구스띠누스는 모든 기도들의 원천이라고 했습니다. 고백자 막시무스, 토머스 아퀴나스, 아빌라의 테레사 등은 주기도문에 관한 자세한 주해와 묵상을 남겼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기도, 주기도문을 예배의 중심에 두고 고대로부터 전해 오는 기독교 전통을 존중하면서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개신교회의 주기도문 사용은 오래된 교회의 전통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목사의 축도가 없는 예배들, 즉 수요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 등에서는 주기도문으로 예배가 마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성가대 연습, 혹은 회의를 마칠 때 주기도문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모임을 끝마칠 때 주기도문을 외는 것은 예수가 가르친 바도 아닐 뿐더러, 주기도문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그냥 모임을 마치자니 어색하고, 한 사람이 기도를 하자니 부담스러워서 주기도문으로 마무리를 해 치운다는 느낌을 받을 때, 씁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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