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9.(금)


십자가의 능력 (고린도전서 1:22-25)

By 전주대학교 대학신문사 , in 신앙과 선교 , at 2019년 7월 29일

[887호 11면, 발행일 : 2019년 3월 20일(수)]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비유할, 나타낼, 표현할 언어가 없습니다. 어떠한 대체물도 없기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종의 형체를,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그분이 시간과 공간에 스스로 제한된 존재로 내려오셨습니다. 만물보다 못한 존재의 끝에 있는 인간에게 오셔서 존재를 섬기는 종으로 사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분에게 대접과 환대가 아니라 무시와 조롱과 비방과 모함과 모욕과 폭력과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릅니다. 그러나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권세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권세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단 하나도 발휘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호와 필요를 따라서 추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헬라인은 지혜를 구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자신을 메시야로 입증하고 싶다면 하늘로부터 오는 특별한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 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표적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멈추지 않고 반복적으로 요구 했습니다. 이런 유대인의 지속적인 요구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은 사흘 동안 선지자가 물고기 배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처럼 예수님도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은 죽어서 3일 동안 땅속에 묻혀있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대인은 실망을 했습니다. 메시야의 자격으로 예수께서 보여주신다는 것이 고작 죽어서 3일 동안 땅 속에 매장되는 것이라는 말씀에 어쩌면 정나미가 뚝 떨어졌을 것입니다. 일말의 기대감 조차도 거품처럼 흩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무덤에 묻히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 표적만 깨달으면 온 세상에 최고의 유익을 주는 표적 중 표적이기 때문에 이것만 보여줄 것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이런 예수님의 죽음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다 높은 권력을 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력자는 그 권력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그 권력을 다스리고 선용할 수 있는 도구로 쓰는 자입니다. 우리의 대학생 됨의 이 권력, 능력, 어떻게 사용해야 될까요? 우리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수님들과 직원 선생님들에겐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특권, 섬기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지배하고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교수됨, 교직원 됨에 부여되는 권한과 능력을 행사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한 학기동안 이 캠퍼스에 출입하는 학생들, 이 지역사회 주민들, 그들의 영적복지, 지성적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해서 섬기고 나누고 베풀고 사랑하는 교직원 선생님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한 한기 동안 십자
가의 능력이 우리 캠퍼스를 다스리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축원합니다.

한병수 목사  |  대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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