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4.(토)


아씨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중)

[전주대 신문 제911호 11면, 발행일: 2021년 6월 9일(수)]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은 아씨시의 평화의 성 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없었던 이름이다. 그런…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21년 6월 10일

[전주대 신문 제911호 11면, 발행일: 2021년 6월 9일(수)]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은 아씨시의 평화의 성 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없었던 이름이다. 그런 데, 그 이후에는 서양에서 아주 흔한 이름 또 는 도시명이 되었다. 말하자면 스페인에서는 프란시스코, 영어로는 프랜시스,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독일에서는 프란츠 등의 이름으로 세계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이 모두 이탈리아 어인 ‘프란체스코’에서 파생되었는데, 그만큼 성 프란체스코를 닮고자하는 열망이 컸기 때 문이다.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은 프랑스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 는 이러하다. 프란체스코의 아버지가 상인이 었고 마치 비단 장사 왕 서방처럼 옷감을 팔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그때 그는 프랑스에서 피카를 만났고 그녀를 아씨시로 데려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가 먼 타국에 서 외로워하자 프란체스코의 아버지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가 아들을 낳자 아들의 이 름을 ‘프랑스 사람’이라는 뜻으로 지어 주었다. 아내를 위한 배려에서 지은 이름이 온 세계가 선호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세상에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부 유한 집안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청소년 시절 을 보냈다. 그런데 청년이 된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의 사업장인 지하실을 내려가 보게 되 었다. 그곳은 염색 공장이었는데, 그 광경을 본 프란체스코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작업장 환 경이 열악한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는 곧바로 그곳을 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집안에 쌓여 있는 비싼 옷감들을 창밖으로 내던지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믿어 왔던 아버지가 지금껏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 려서 쌓은 부였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아버지 에 대해 배신감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회당 광장으로 갔다. 이 소란으로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아버 지도 달려왔다.

프란체스코는 노발대발하는 아버지를 향해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돈을 번 아버지를 용서 할 수 없으므로 아버지의 것은 모두 돌려주겠 다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걸친 옷을 모두 벗어서 아버지에게 던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 치지 않은 민망한 모습에 옆에 있던 주교가 자 신의 신부복으로 프란체스코를 감싸주었다.

이 순간부터 프란체스코는 아버지와 결별하 고 출가를 감행하였다. 곧바로 그는 성 밖으로 나가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들판에서 돌을 쌓아 오두막을 만들고 생활하였다. 부유한 생 활을 포기한 그는 허허벌판에서 굶주림을 참 아가며 생활하였고 청빈한 성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그 집은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당시 모습 그대로 있는데, 이를 보존하기 위해 그대로 두고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집을 보려면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교회사 김천식 박사 (joayo7kim@hanmail.net)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Share on Facebook
Facebook
Tweet about this on Twitter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