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화)


용서“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눅 23:33-35)

-821호, 발행일 : 2014년 4월 30일(수)- 진리의 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안타까운 시간(때)이…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19년 4월 25일

-821호, 발행일 : 2014년 4월 30일(수)-

진리의 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안타까운 시간(때)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지만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내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집니다. 나도 모르게 내 이웃에게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 누구에게나 있는 공통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의 자리, 억울하게 인생을 접어야 하는 자리, 부끄러움의 자리에서도 원망, 불평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고통의 자리로 몰아넣는 사람들을 염려하고 용서하며 사랑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바로 2,000년 전 인류의 모든‘죄’를 담당하시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의 자리였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생각할 때 최악의 자리입니다. 십자가 사형의 틀이 세워지게 되면 체중이 실림과 함께 박힌 못 주위의 결을 따라 생살이 찢어집니다. 몸의 체중이 고스란히 고통의 무게가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부끄러움의 자리입니다. 그림이나 성화에서 아래 부분을 가린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은 화가들이 옷으로 가려준 배려일 뿐 실제로는 우리 주님은 그것조차도 없는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당신의 인격, 체면, 위신, 자존감, 위상을 모두 포기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의 자리는 내 한 몸을 추스르기조차 버거운 자리였고, 이런 고통과 억울함 그리고 부끄러움의 시간과 자리는 남을 의식하고, 돌아볼 여유가 없는 자리, 그곳이 십자가 죽음의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고통과 억울함과 부끄러움, 죽음의 자리에서 우리 주님의 입술에서 나온 첫 번째 절규(기도)소리는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24)”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최악의 고통의 자리에서도 자신이 아닌‘저들’을 염려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이 인간이 개발해 낸 가장 잔인하고 참혹한 부끄러움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면서 또 자신을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절한 죽음의 순간에 그들(저들)을 품에 안으시는 것입니다.“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함이나 칼이랴”(롬 8:35)의 말씀처럼 심지어 십자가의 환난과 고통조차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분리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이기에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할 때 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기도하신‘저들’은 누구입니까?“저들‘ 곧 예수님이 용서를 구한 자들은 첫째,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로마 병사와 가야바 병사들입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으며 명령대로 행하였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르고 행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 병사들 보다 더 큰 죄를 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넘겨준 빌라도와 이 빌라도를 이용해 십자가형을 얻어낸 가야바와 유대 권력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시면서 그들을 생각하셨습니다. 셋째, 로마병사처럼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오직 권력자들의 눈에 들기를 바랐던 사람들로 유대교의 선동을 받아‘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무리들이었습니다. 넷째, 스승을 버려두고 달아난 제자들입니다. 죽음이 무서워 입을 다물고 사태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추종자들입니다. 때로는 침묵이 외침보다 더 큰 죄일 수 있고, 관망이 행동보다 더 잘못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침묵과 관망이 그리고 도피가 얼마나 큰 죄이었는지를 말입니다. 다섯째, 예수님께서 용서를 구한 저들 안에는 모든 인류가 포함되어 있으니 내가 저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게 되었으니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죄는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왜 어렵고, 어둡고, 다투고, 대항하고, 무섭게 깨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십자가의 용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용서, 이 사랑 받을 수 없는‘나’를 위해 지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래서 위대하고 놀라운 사랑과 용서의 십자가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복수를 해도 시원치 않은 원수를 용서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할 때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치유와 평화,사랑, 넘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용서만이 오늘 우리의 해야 할 일이요, 오늘 우리의 가장 필요한 선행되어야 할 결단입니다. 용서를 통해 내 평생 얻을 수 없는 환희, 기쁨, 행복, 평화, 사랑과 부활을 맛보는 인생의 승리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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