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7.(월)


인간의 가능성

[전주대 신문 제908호 11면, 발행일: 2021년 3월 24일(수)]   한병수 목사 (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조교수/ 대학교회 담임목사)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21년 3월 31일

[전주대 신문 제908호 11면, 발행일: 2021년 3월 24일(수)]

 

한병수 목사
(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조교수/
대학교회 담임목사)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땅히 가야 할 곳의 이정표다. 산더미 분량의 정답보다 하나의 좋은 질문이 더 소중하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도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 하나님이 그에게 다가가서 사랑과 회복의 문을 연 소통의 방식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무질서한 인류의 회복은 질문과 함께 시작된다. 자신의 눈과 지성이 밝아져 처음으로 써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질문은 지성의 사용 설명서와 같다. 모든 사람의 의식 속에는 무언가를 향하는 화살표가 있다. 그 화살표의 방향과 질은 질문의 내용이 좌우한다. 질문은 의식과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발걸음은 질문의 손끝을 따라간다. 나의 관심과 의식과 시선과 시간과 에너지의 실질적인 소유권은 내가 마음의 아랫목에 둔 은밀한 질문이 차지한다. 나의 전부가 헛되게 낭비되지 않고 지혜롭게 소비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질문을 인생의 손으로 붙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스스로가 혹은 타인이 던진 최고의 질문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묻고 일평생 답을 찾아야 할 인생의 질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보다 더 위대한 물음이 어디에 있겠는가?

기독교의 지성사적 영향이 지대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관은 이탈리아 출신의 천재 철학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dola, 1463-1494, 앞으로 “피코”로 표기함)의 명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Oratio de hominis dignitate, 1486년 저술) 안에서 발견된다. 그는 31년의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동서 방의 지성사를 두루 섭렵하고 다양한 종교 사상가의 문헌에도 심취한 괴짜였다. 방대한 독서와 연구를 통해 그가 추구한 것은 모든 단절의 벽을 허물어야 도달하는 모든 학문과 모든 종교의 조화였다. 이 융합적인 공부의 목적은 진리 추구였다. 공부를 위해 공부했고, 정신의 단련과 진리의 인식과 사랑을 위하여 연구했다(25.158-159).

인간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피코는 융합적인 접근법을 시도한다. 그가 보기에, 소크라테스가 평생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이유는 “자신을 인식한 사람은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1.124). 이토록 중요한 인간은 만물의 중심이며 온 우주의 요약이다. 피코는 이슬람 최초의 학자인 사라첸 압달라(Abd Allah)를 거명하며 인간은 “세상의 장관 중에서도 가장 경탄할 만한 존재”이며, 그리스 신화의 한 인물인 메르쿠리우스의 명언을 인용하며 인간은 그 자체로 “참으로 위대한 기적”이라 한다(1.1). 인간이 동물과 하늘의 별들과 태양만이 아니라 “천국의 지극히 행복한 무리”인 천사들의 질시까지 받는 이유는 무한한 자율성과 가능성 때문이다.

다른 모든 만물은 “설정된 법칙의 테두리” 안에서 존재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를 따라 본성의 테두리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특권을 소유한다. 이런 인간의 탁월함에 대해 피코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이후에 했을 법한 발언을 상상한다. “오 아담이여, 나는 너에게 일정한 자리도, 고유한 면모도, 특정한 임무도 부여하지 않았노라!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어느 면모를 취하고 어느 임무를 맡을 것인지는 너의 희망대로, 너의 의사대로 취하고 소유하라!”(5.18-19).

이러한 자유의 보존을 위해 하나님은 인간을 천상의 존재도 아니고 지상의 존재도 아니며, 사멸할 존재도 아니고 불멸할 존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조형자(造型者)로 만드셨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형상을 빚어내는 조각가로 만드셨다. 그래서 식물과 다른 모든 동물은 모태에서 이미 정해진 씨앗을 가지고 살지만 인간은 미완의 존재로 살아간다. 만약 인간이 자기 안에 식물의 씨앗(생존)을 심으면 식물처럼, 동물의 씨앗(본능)을 심으면 동물처럼, 천사의 씨앗(이성)을 심으면 천사처럼, 하나님의 씨앗(오성)을 심으면 하나님의 아들처럼 살아간다(6.24-31). 인간은 “온갖 육체의 얼굴로, 모든 피조물의 자질로 조형하고 형성하고 변형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존재보다 뛰어나다. “카멜레온 같이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우리의 특전”은 오직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야곱의 사다리 위에 서서 선택해야 한다. 올라가면 천사보다 더 높은 권능과 고매함을 얻고, 내려가면 짐승의 욕망과 식물의 배부름에 만족하는 인생으로 전락한다. 나는 누구인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그 모델은 찾았는가?

한병수 목사 (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조교수/대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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