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6.(일)


전주지역 관리양성의 산실, 전주향교

[전주대 신문 제906호 7면, 발행일 : 2021년 1월 13일(수)]   전북의 문화유산 산책 ■ 향교의 개요 조선시대에는 교육제도의 일환으로 한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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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 신문 제906호 7면, 발행일 : 2021년 1월 13일(수)]

 

전북의 문화유산 산책

향교의 개요

조선시대에는 교육제도의 일환으로 한양에 고등교육기관인 성균관을 두었고, 중등교육기관인 중앙의 4학과 지방에 향교를 두었다. 사학은 중등기관인 서원과 초등기관인 서당이 있었다. 향교는 유학의 소양을 갖춘 관리양성 위한 고등, 중등교육기관 이었으며, 조선 건국 후 1읍 1교를 원칙으로 329개 고을에 향교를 건립하였다.

향교에는 제향공간과 교육공간의 영역이 나누어져 있다. 제향공간은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廡)・서무(西廡)가 있으며, 교육공간으로는 명륜당(明倫堂)과 그 앞의 좌우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이며, 평민의 자제도 향교에 입학이 가능하였다.

향교의 교관은 6품 이상의 교수(敎授), 7품 이하의 훈도(訓導), 생원・진사인 교도(敎導)가 있어 중앙에서 파견하며, 학장은 관찰사가 임명한다. 향교는 양반과 양인 모두 입교가 가능하고, 교생은 대도호부, 목에 90명, 도호부에 70명, 군에 50명, 현에 30명이 배정된다. 향교의 경제적 기반을 위해서 향교 크기에 따라 향교전이 지급된다.

전주향교사적 제379

전주향교는 한옥마을이 있는 전주시 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향교의 본래 위치는 현재 경기전 근처였으나 경기전을 세우게 되자 주위가 번잡하다고 하여 1410년(태종 10)에 화산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뒤 1603년(선조 36) 순찰사 장만과 유림들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향교의 구성은 서울의 성균관을 모방하여 대성전, 동・서무, 내삼문, 외삼문, 명륜당, 장판각, 제기고, 수복실, 계성사, 양사재, 사마재, 수직실, 만화루 등이 있으며,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정면에 일월문이, 그 앞에 만화루가 있다. 대성전 뒷담을 사이에 두고 명륜당이 있고 서쪽으로 장서각, 계성사, 양사재, 사마재가 있으며, 주위에 고직사 등 여러 건물들이 있다. 특히 5성의 부친 위패를 봉안하는 계성사는 다른 향교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며, 중국의 예를 따라 1741년에 건립되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향으로 중국 4성과 10철, 송의 6현을 제향하고 있으며, 동무와 서무에는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중국의 유학자 7명과 한국의 18현 등 총 25명을 제향하고 있다. 대성전의 구조는 정면 3칸・측면 2칸으로 정면 3칸에는 널문을 달았으며, 도리기둥에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로 좌우 1칸씩은 눈썹지붕을 이어 달았으며, 전면에는 모두 널문을 달았다. 따라서 눈썹지붕의 도리가 길게 뻗어 나와 있는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으며, 팔작지붕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향교 건물을 이와 같은 구조로 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정원 90명의 교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봄·가을 석전제에 분향하고 있다.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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