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화)


징계의 가르침

[전주대 신문 제913호 11면, 발행일: 2021년 9월 29일(수)]         징계는 유익하다. 징계가 있으면 하나님의 아들처럼 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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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 신문 제913호 11면, 발행일: 2021년 9월 29일(수)]

 

 

 

 

징계는 유익하다. 징계가 있으면 하나님의 아들처럼 된다. 그러나 징계를 무시하면 짐승으로 전락한다. 징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이렇게 단호하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12:7)

징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지적한 말씀이다. 징계는 하나님이 아들로 우리를 대우하는 것이기에 참으란다. 참을 때에 징계의 고난은 연단이 되기에 참으란다. 아들을 고난으로 연단하는 이는 아버지다. 그런 연단과 훈련이 없다면 아들이 아니라고 한다. 징계하는 분은 공포의 아버지가 아니다. 징계의 채찍을 든 아버지의 마음은 자식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는 법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고통의 농도는 짙어진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에 그 고통의 농도도 측량을 불허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성자의 반열에 곧장 등극하는 기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서서히 성장한다. 그런 성화의 필수품은 징계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징계”를 가리키기 위해 헬라어 “파이데이아”(παιδεία)를 사용한다. 교육이나 훈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징계는 파괴를 겨냥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기자가 밝혔듯이 거룩에의 참여를 돕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빚는 조각칼과 같다. 물론 징계가 당시에는 즐겁지가 않다. 그러나 징계로 연단된 사람은 의의 평온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각자가 풍기는 고유한 향기를 경험한다. 그들 중에는 시기심이 생길 정도의 안정된 의가 느껴지는 도전적인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는 부요한 가정에서 좋은 부모 밑에서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삶의 기구한 사연을 들어보면 연단의 결과라는 사실이 금새 확인된다. 인간은 원래 미련하다. 이것을 지혜자는 아이들의 마음에 미련함이 있다는 말로 묘사한다. 훈련이 없으면 죽는다고 말하고 어리석음 속에서 길을 잃는다고 단언한다.

징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인내이다. 우리를 아들로 여기고 계시다는 사실의 증거이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인내한다. 우리의 본성을 뒤덮은 미련함이 벗겨지고 삶에 박힌 우매함이 제거되기 위해서는 고통이 수반된다. 성화는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 아들의 신분 재확인과 거룩에의 참여와 의의 평강한 열매라는 영광의 중한 것에 비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통스런 징계와 연단은 과연 경한 것이겠다. 그리고 고통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필히 지나간다.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이 없는 징계는 파괴의 수단이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이 없는 분노의 출구로 동원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사도 학생을 징계해야 하겠으나 부모의 사랑으로 그리해야 한다. 학생의 파괴가 아니라 변화와 성장을 원한다면 아비의 심정으로 눈물이 묻은 사랑의 매를 사용해야 한다. 목회자도 동일하다. 성도를 권징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관의 차가운 판결이 아니라 아비의 마음으로 파괴가 아니라 성화의 방편으로 그리해야 한다.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잠12:1)

징계는 강한 책망과 거절의 언사를 의미하고 때때로 수정을 위해 처벌도 수반하는 개념이다. 징계를 싫어하는 마음의 배후에는 대체로 교만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나는 고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완전주의 교만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짐승의 징표란다. 짐승은 자신의 본성을 수정하지 않는다. 불변의 본성을 따라 생각하고 움직이며 일평생 살아간다. 그런 짐승을 징계하면 본성마저 파괴된다.

그런데 징계의 거부는 금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건 상식이다. 우리 안에서도 뾰족한 지적의 목소리가 고막을 살짝만 건드려도 곧장 격렬한 불쾌와 보복의 이빨을 드러낸다.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짐승의 본성이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낸다. 변하지 않는 사람과 종종 마주친다. 좋은 것들은 한결 같을수록 좋다. 그러나 죄인의 관념과 습성에 가공할 천착을 보이는 불변의 사람들은 혹시 어리석은 짐승에 가깝지는 않은지 돌아보지 않으면 안되겠다. 이런 성찰의 눈으로 나 자신을 수시로 돌아보게 된다.

한 사람이 바뀌는 건 기적이다. 한 가정의 변화도 기적이다. 교회의 변화, 사회의 변화, 국가의 변화, 세계의 변화도 기적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겠다. 대부분의 사람이 징계를 싫어하고 수정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칭찬과 고집은 인간의 본성적인 기호이다. 이와는 달리 수정과 변화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사랑하는 자라고 지혜자는 규정한다. 나는 불완전한 자이고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자이고 배운 바가 내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복이라고 믿고 주를 향하여 나날이 자라가는 자가 지혜자다.

변화는 익숙하던 것들과의 이별과 생소하던 것들에의 적응을 요구한다. 당연히 거북하고 불편하다. 그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접으시라. 징계는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첩경이고 거부할 때에는 짐승이 되기 때문이다.

 

한병수 목사(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조교수/대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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