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3.(수)


총명(聰明)함에 대한 단상

[874호 5면, 발행일 : 2017년 12월 11일(월)] 달포 전에 지진의 우려 속에도 대학 진학을 위한 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졌다. 대학 진학이…

By editor , in 오피니언 , at 2019년 7월 16일

[874호 5면, 발행일 : 2017년 12월 11일(월)]

김형술 교수 (한문교육과)

달포 전에 지진의 우려 속에도 대학 진학을 위한 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졌다. 대학 진학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대단히 각별하여 이 시험을 위한 수험생과 학부모의 노고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올해도 ‘총명탕’이니 ‘총명주사’니 하는 머리 좋아지는 처방에 관한 이야기들이 매체에 오르내린 것은 이 시험을 둘러싼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긴장과 열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하겠다. 이즈음 ‘총명’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총명하다’는 말은 대개 머리가 좋다는 말로 사용된다. 그런데 ‘총명’이란 말은 과연 두뇌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말인가?
‘총명’은 한자로 ‘聰明’이라 쓴다. ‘총(聰)’이란 글자는 뜻을 보여주는 ‘耳[귀 이]’와 ‘바쁘다’라는 뜻을 가지며 발음기호 역할을 하는 ‘悤(총)’이란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귀가 밝다’는 뜻이다. 보다 익숙한 글자인 ‘明’은 ‘밝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널리 알려진 대로 日[해 일]과 月[달 월]이 결합하여 ‘환하다’, 곧 ‘눈이 밝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분석하고 보면 ‘총명’이란 단어는 ‘귀 밝고 눈 밝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 된다. 무언가를 주의 깊게 들을 줄 알고, 무언가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총명한 사람인 셈이다.
초단위로 숨 가쁘게 일상을 몰아가는 우리에게 누군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무언가를 충분히 살피는 일은 점점 더 쉽지 않은 일이 되어간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면 얼핏얼핏 큰 사건을 제외하고는 그저 부옇게 부유(浮遊)해온 시간 끝에 서있는 이 순간의 나만 또렷할 따름이다. 깊은 밤하늘을 차디차게 가르는 만취한 사내의 외침이며, 얼마 남지 않은 갈잎을 부산히 때리는 바람소리며, 겨울을 나려고 한껏 몸을 부풀린 길냥이의 간절한 눈동자들은 지우개로 지우고 남은 연필 자국마냥 희뿌옇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총(聰)하고 명(明)하다는 것은 ‘나’의 삶속에 보다 의미있는 기억과 시간을 좀 더 확보하고 채워나가는 일이 된다. 일상을 지내는 동안 무의미하게 흩어져가는 순간순간에 나만의 의미 있는 관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일,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고 체인(體認)하는 삶의 진실. 이것이 바로 총명함을 통해 얻게 될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는 얼마나 총(聰)한 사람인가?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진’ 아버지를 떠올린 <위험한 家系 1969>에서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라고 했던 기형도는 얼마나 명(明)한 사람인가? 또 조선후기 저명했던 박제가는 이런 시를 지어 명(明)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毋將一紅字 그저 ‘붉다’는 말 한마디로
泛稱滿眼華 눈앞의 온갖 꽃을 얼버무리지말자.
華鬚有多少 꽃술도 많고 적은 차이 있으니
細心一看過 섬세한 마음 붙여 살펴봐야지.

우리는 총(聰)하고 명(明)할 시간이 없다. 나를 몰아갈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 속 어느 틈에라도 총(聰)하고 명(明)할 수 있는 ‘나’가 되기를 바라며 세밑에 내년 무술년의 다짐을 겸연쩍게 내어본다.

김형술 교수  |  한문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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