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9.(토)


코로나19 경험 속에서 절제와 감사

[전주대 신문 제901호 3면, 발행일 : 2020년 6월 24일(수)]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다. 코로나19 시대의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By editor , in 뉴스 , at 2020년 6월 27일

[전주대 신문 제901호 3면, 발행일 : 2020년 6월 24일(수)]

                     서화자 교수
       (교육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다. 코로나19 시대의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다른가? 이전에는 ‘자유’였는데, 이후에는 ‘절제’라 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각국이 봉쇄되면서, 우리는 지금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가 없다.

국내에서도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 기>를 하자니, 먹고사는 경제활동이 문제이다.

이런 딜레마를 어 떻게든 극복해보려고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하였지만, 최근 들어 조용한 확산이 여전하다.

결국, 제한된 자유, 속박된 자유 그것은 절제인데, 아마도 치료제와 백신이 나타나기까지는 자유 의 자리는 절제에게 철저히 양보해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불 투명하고 불확실함 앞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절제라는 거리를 둔 암묵 속에서 삶의 진실들을 물어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무스타파 달렙(차드 시인)이 “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에서 코로나19 시대의 양상들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에 의해 흔들리는 인류, 그리고 무 너지는 사회.. 코로나바이러스라 불리는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뒤집고 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인가가 나타나서는 자신의 법칙을 고집한다.

그것은 모든 것에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이미 안 착한 규칙들을 다시 재배치한다. 다르게… 새롭게… 서방의 강 국들이 시리아, 리비아, 예멘에서 얻어내지 못한 것(휴전. 전투 중지)들을 이 조그만 미생물은 해내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 리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 코로나바이러스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우리의 휴머니티가 무엇인지 질문해 보자.

이렇게.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임마누 엘 칸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의제 속에서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3)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앞의 세 물음에 대한 답을 통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물어본다.

코로나19 시대를 살면서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생각해 본다.

자유로운 인간이, 자율적인 인간이 과연 그 자유가 속박되 고, 자율보다는 타율에 의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코로나19 시대의 신앙생활도 자유롭지가 않다.

교회당을 출입 하자면 입구에서 체온을 검사 당하고, 인적 사항에 서명한다. 마 스크를 쓰고 답답하게 찬송을 부르고,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 있 어서 옆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적극적으로 할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칸트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겠다.

칸트의 제4비판서로 불리는 소위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라는 저서가 있다.

그 책 서 문에서 칸트는 “도덕은 불가피하게 종교에 이른다.”고 하였다.

도덕의 종착은 종교이고, 종교의 시작은 도덕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인데, 대부분 종교인들은 종교와 도덕은 마치 정교분리원 칙(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처럼 도교 분리(도덕과 종교)를 주 장할지 모른다.

마치 인간 세상의 도덕을 초월하여 종교는 저 하 늘나라의 신성한 영역인 것처럼, 그러나 나는 도덕과 종교는 불 가분의 관계임을 지지하고 싶다.

또한, 칸트는 자연의 법칙에 종속되면서도 인간에게는 자유의 지가 있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어야 할 의무 가 있는데 인간이 이기적인 마음을 물리치고 실천이성의 법칙에 따르려면, 초월적 존재를 요청하게 되며 이 초월적 존재가 바로 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은 신의 현존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 후 근대 철학의 대가인 임마누엘 칸트의 묘비명에는 그의 「실천이성비판」 의 결말에 쓰여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나의 마음을 채우고, 내가 그것에 대해 더 자주, 더 깊이 생각 하면 할수록 늘 새로운 경외심과 존경심을 더해주는 것 두 가지 가 있다. 하나는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 그리고 내 마음속 의 도덕법칙이다.” 칸트의 묘비명에서 느끼는 것은 자유보다는 절제이다.

그리고 덧붙이면 감사인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이 그렇다. 인간을 초월 한 저 경이로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고 벗어나려는 자유 가 결국 절제로,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내 마 음속의 도덕법칙(양심)은 늘 감사로 다가온다.

점점 더 코로나19의 피로도는 쌓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인간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야 한다.

러한 때 나는 인간의 창조주께서 이미 마련해 둔 최초의 물줄기 를 다시 찾아 나서고 싶다.

무스타파 달렙이 우리의 휴머니티가 무엇인지 질문해 보자 했듯이, 칸트가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하고 있듯이.

요즘 공관복음을 공부 하면서, 마지막 결론에서 한 분 예수의 초상이 나에겐 왜 그렇 게 짠하게 느껴져 다가왔는지…..

이제는 우리가 모두 모두를 향해서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할 때임을, 이미 그렇게 해 왔어야 했음을  코로나19는 절제와 감사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다.

권력자는 권력자대로 리더는 리더대로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들대로 선한 영향력을 서로에게 끼쳐 선한 물결이 소리 없이 잔잔하게 흘러 캠퍼스에 퍼지기를 바라는, 이 마음이 2020년 8월 30일 은퇴를 앞둔 한 교수의 소원이다. 그리고 우리 대학의 구성원 모두는 절제하는 자유로 늘 감사하면서 어두운 세상에 반짝이는 경이로운 별로, 인간 세상 에서 존경받는 기독교적 양심으로 휴머니티를 잃지 말자.

그리고,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자.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Share on Facebook
Facebook
Tweet about this on Twitter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