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6.(일)


평화의 성지 아씨시(상)

[전주대 신문 제910호 11면, 발행일: 2021년 5월 12일(수)]     아씨시 하면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기도가 생각난다….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21년 5월 14일

[전주대 신문 제910호 11면, 발행일: 2021년 5월 12일(수)]

 

아씨시 마을 전경

 

아씨시 하면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기도가 생각난다. 이는 아씨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기도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프란체스코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에 대한 관심은 그의 종교적 명성보다는 그의 검소함에 있었다.

맨 처음 아씨시를 간 때는 2002년이었다.

알바니아 의료 봉사에 참여한 다음 선교팀과 헤어져 혼자 아씨시로 향했다.

로마를 거쳐서 아씨시 역에 내렸는데,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이번에도 ‘여행은 모험이다.’는 생각으로 여행하기 때문에 지명 찾아가는 모험을 감행했지만, 어두운 밤에 생판 모르는 타국에 발을 딛고 보니 난감했다.

물론 여기 오기 전에 유럽에서 발행한 유스호스텔 주소록을 챙겨서 가지고 왔지만, 초행길이고 더군다나 캄캄한 밤이라 어디가 어딘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역 광장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프란체스코 대성당이 있는 마을 중심부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는 벌판 같은 곳을 지나기도 하고 울창한 가로수를 지나치기도 하고 경사를 오르더니 10분이 채 안 되어 중심부 산 피에트로 광장에 도착하였다.

차에 내려서 교통경찰에게 유스호스텔을 물었더니 버스가 올라온 길 쪽을 가리키며 내려가라고 한다.

가다 보면 싸인 보드가 나타나겠지, 기대하며 가고 있는데, 아무표식도 보이질 않는다. 경찰이 말해준 것이니 맞겠지 하며 계속 걸어갔지만, 가로수도 없어지고 거리는 더욱더 컴컴한데, 설상가상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인적도 없다.

이러다가 한밤중에 미아가 되는 게 아닌가하고 겁이 덜컹 났다.

그런데 100여m 앞쪽에 무슨 불빛이 보인다. 얼른 그곳까지 가보니 전화 부스였다.

비도 피할 겸 일단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배낭을 뒤져서 유스호스텔 주소록을 꺼내서 전화했다.

직원이 받길 레 그곳을 찾아가다가 길을 잃었다고 말했더니, 어디로 해서 어떻게 찾아오라고 말한다.

지리를 전연 모르는 내가 그 설명을 알아들을 수 가없다.

위기 상황에서는 때로는 막무가내식도 한 방법이다.

그래서 초행이고 밤중인데, 내가 어떻게 설명대로 찾아갈 수가 있겠는가!

내가 산 피에트로 광장에서 내려오다가 우측으로 꺾어서 200m 걷다가 만난 전화 부스에 있으니 태우러 와 달라고 단호하게 명령조로 말한 다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내가 좀 심했나?

좀 사정 조로 부탁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나? 하며 후회도 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인적이 없는 후미진 곳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혼자 있자니 좀 으스스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빨간색 승용차가 부스 앞에 섰고 젊은 청년이 차에서 내린다.

나를 보더니 혹시 조금 전 전화한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어서 타라고 한다.

비싼 호텔이라면 돈을 많이 내는 손님이라 당연히 모시러 올 것이지만, 그 당시 유스호스텔 숙박비는 한화로 3만 원이 채 안 되는 저렴한 금액이다.

말하자면 싼 투숙객인데, 태우러 온 것이다. 그것도 비 오는 밤중에 말이다.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보니 평화의 도시가 실감이 났다.

〈계속〉

캄캄한 밤을 밝히고 있는 아씨시 대성당 야경

 

교회사 김천식 박사 (joayo7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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