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7.(금)


“하나님의 재판”

[전주대 신문 제916호 11면, 발행일: 2021년 12월 22일(수)]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신1:17)     재판이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By news , in 신앙과 선교 , at 2021년 12월 24일

[전주대 신문 제916호 11면, 발행일: 2021년 12월 22일(수)]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신1:17)

 

 

재판이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임의로 재판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나님께 속한 재판의 특징을 모세는 몇 가지로 정리하여 가르친다. 첫째,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경우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해야 한다. 둘째, 자국인과 타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해야 한다. 셋째, 외모를 보지 말아야 한다. 넷째, 귀천을 차별하지 않고 경청해야 한다. 다섯째, 사람의 낯에 대한 두려움은 금물이다.

 

하나님의 재판은 가족이나 친족 구성원을 편애하지 않는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는 아니 되는 재판이다. 의식이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법정에는 재판관의 자격 미달이다. 이 자리는 혈통의 경계를 넘어서는 가치관을 요구한다. 이는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개념과는 구별된다. 오히려 가정을 돌보는 일도 하나님의 공의가 가정에 머무를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혈육에 치우치지 않은 판결은 결코 가정을 파괴하지 않고 가정을 견고하게 한다. 모든 가장은 이런 재판관 의식에 투철해야 한다.

 

하나님의 재판은 자국인과 타국인 사이의 차별도 금지한다. 자국민의 우월성을 통치의 열광적인 수단으로 삼았던 인물과 시대가 존재했다. 일등 국민, 이등 국민, 삼등 국민 개념도 한때는 번듯한 제복을 입었었다. 비록 오늘날 그런 민족주의 폐단이 제도화된 나라가 드물지만 실제로는 법의 정의가 국경선을 넘어가는 경우는 대단히 희귀하다. 하나님의 재판은 공의가 피부와 문화와 제도와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판결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십계명 제3계명의 위반이다.

 

하나님의 재판은 사람의 외모에 휘둘림이 없다. 여기서 외모는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이 감지해 낸 판결의 모든 요소를 총칭한다. 재판의 기준은 우리의 면밀한 관찰이나 그 관찰에 기초한 사람들 사이의 다수결 합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시듯이 사람의 중심을 볼 때 하나님의 재판은 성립된다. “중심”은 몹시 어려운 개념이다. 나는 “마음의 동기”가 “중심”에 가장 가까운 의미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동기”를 읽어내는 작업이 판결의 관건이다. 그 작업은 동기를 둘러싼 변방의 시간적 공간적 요소들을 걸러낼 때 가능하다.

 

하나님의 재판은 귀천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의 발언을 경청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귀인에게 경청의 귀를 양도한다. 이는 귀인의 사회적 신뢰도가 천인의 그것보다 높아서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현상의 당위는 사람들의 저항과 의문을 잠재우는 최상의 도구로서 적격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은 늘 악용과 오용과 과용이 군침을 흘리며 눈독을 들이는 표적의 일 순위 대상이다. 당연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검토하지 않으면 판결은 음흉한 거짓에 놀아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재판은 당연한 현상의 틈새를 파고드는 속임수에 농락당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재판은 사람의 낯에 대한 두려움도 가볍게 능가한다. 때때로 사람의 면상은 오가는 구어가 없어도 상대방을 위협하고 제압하는 공포의 수단이다. 얼굴만 보아도 위축되고 주눅 드는 사람들이 있다. 재판관은 그런 자가 가진 막대한 권력과 보복이 두려워 반듯한 판결을 주저하게 된다. 두려움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재판은 하나님의 법이 가장 두렵다는 사실의 선언이다. 판결봉은 우리가 하나님을 누구보다 심히 두려워할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가 되는 입술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재판은 모든 일이 행한 대로 갚아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섭리이다. 인간의 법정에 제한되지 않고 온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항상 진행되고 있다. 기독교 사학은 하나님의 이러한 재판을 보여주는 구별된 처소이다. 마땅히 친족이라 해서 두둔하지 않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하지 않고 보이는 외모에 미혹되지 않고 천인의 발언이라 해서 무시하지 않고 사람의 낯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는 그래야 재판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의 증인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나 아들에 대해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재판은 엄정했다. 당시의 재판관인 빌라도 총독도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손까지 씻었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세상의 죄를 짊어진 아들에게 휘지 않은 판결을 내리시고 지상 최대의 형벌을 내리셨다.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재판이 무엇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재판관을 이 땅에서도 보고 싶다.

 

 

한병수 교수(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조교수/대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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