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1.(목)


현장으로 보는 세계기독교역사 이야기 미국편(2)

[전주대 신문 제893호 11면, 발행일 : 2019년 10월 16일(수)] 청교도의 용기와 미국 건설 신대륙 개척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의…

By editor , in 신앙과 선교 , at 2019년 10월 18일

[전주대 신문 제893호 11면, 발행일 : 2019년 10월 16일(수)]

청교도의 용기와 미국 건설

▲ 청교도들이 출발한 영국 납부해변의 플리머스 항구와 그들이 타고 항해한 메이플라워호

신대륙 개척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참여했지만 그중에서도 영국 특히 청교도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미지의 대륙이었던 이곳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원래의 미국 원주민을 제외하고 1492년에 상륙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꼽고 있다. 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후 영국의 존 스미스 선장이 1607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영국인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1609년 존 스미스 선장이 영국으로 돌아가자 흐지부지되었고 실제적 미국 건설은 1620년에 미국에 도착한 영국의 청교도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청교도들은 영국 헨리 8세가 국왕이 교회의 머리라는 의미의 수장령을 선포한 이래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순수한 신앙심으로 뭉쳤고 수장령을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청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등지로 피신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신대륙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102명의 청교도들은 1620년 9월 6일 영국의 남쪽 작은 항구 플리머스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출발하였다. 이들은 대서양의 거센 풍랑을 헤치고 63일 만에 미국 메사추세츠 해변에 상륙하고 영국을 떠나올 때 마지막 항구 이름을 따서 처음 도착한 곳을 플리머스라 이름 짓고 정착촌을 만들었다. 그들은 대서양의 험난한 풍랑과 12월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느라 고생하였다. 더더욱 이듬해 땅을 개간하고 영국에서 가지고 온 콩, 보리 등을 심었지만 토질에 대한 이해 부족과 미숙한 재배 경험으로 곡식을 수확하지 못하여 그해 가을도 배고픔의 시련으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에 아브나키, 스쿠안토 등 인디언 부족들이 와서 경작법을 알려주었다. 아사
직전에 있던 청교도들은 결국 그들의 도움으로 다음 해에 곡식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청교도들은 곡식을 거두어들인 다음 도움을 준 인디언들을 초청하고 그들과 함께 함께 추수감사 예배를 드렸다. 플리머스 정착촌에는 첫 감사 예배를 드렸던 교회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들리는 현대적 추수 감사 예배 형식이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아무튼, 청교도들은 역경을 극복하는 용기로 미지의 신대륙에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미국을 기독교 사회로 건설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 현재도 청교도들의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는 17세기 마을을 지켜가고 있다

 

 

 

 

 

김천식 문학박사 (교회사/joayo7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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