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6.(토)


100년 전 N포 세대의 미래

[882호 13면, 발행일 : 2018년 10월 4일(수)]     100년 전 경제공황이 한창이었던 해, n포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파산’이란 제목의…

By editor , in 오피니언 , at 2019년 7월 24일

[882호 13면, 발행일 : 2018년 10월 4일(수)]

 

김윤희 교수
(한국고전학 연구소 HKPlus연구단)

 

100년 전 경제공황이 한창이었던 해,
n포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파산’이란 제목의 시가 신문에 실렸다.

먹을 것 빼앗기니 물질상의 파산이오.
배우지 못 했으니 정신조차 파산이다.
애인을 못 만나니 연애에도 파산이오.
知己마저 없으니 사교 또한 파산이다.
파산의 설음이야 어디다 말하랴만
오죽하나 깃 북은 이 나의 심장이다
밟히면 밟힐수록 꿋꿋하여지는
파산자의 심장 이 나의 심장이다
(권구현, 파산, 동아일보 1929년 12월 17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 불경기는 1926년 만주공황, 1929년 세계대공황을 거치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파산한 남편 때문에 한강철교에서 어린 두 아이를 안고 투신자살한 아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분신자살한 선천에 사는 일본인 여관업자 등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신문 지상에 자주 보도되었다.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처음 경험한 조선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불경기에서 벗어나려면 일본으로부터 정치적 자치권을 얻어내야 한다거나, 조선인의 의사를 전달한 국회의원을 뽑아 일본 제국의회에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총독부의 조선개발정책에 적극 협력하여 경제발전을 해야 한다거나 자유경쟁 질서의 폐단 시정을 위해 정치권력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주장도 일어났다. 다양한 주장과 구체적 실천방법 등이 쏟아져 나왔지만, 합의는 쉽지 않았다.

정치적 결정권이 없었던 식민지 상황으로 인해 자치와 독립, 친일과 반일의 정치적 이슈들이 경제문제와 뒤섞였고, 논의가 무성한 가운데 총독부는 기존의 자유경쟁질서를 유지한 채 대자본과 대지주 중심의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했다. 일본 본국 경제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여론을 주도했던 상층 조선인과 일시적인 경제회복의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조선인 사회는 빠르게 총독부의 경제정책을 승인하기 시작했다. 대자본 중심의 경제구조는 끊임없이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1931년 일본의 만주점령과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경제는 되살아났고, 고용이 증가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전쟁물자 생산 일자리가 증가했고, 마침내 1944년 9월 강제노동인 징용령이 실시되었다. 1929년 n포 세대가 10년이 지나 장년이 되었을 때 그들이 직면했던 현실은 참혹한 것이었다. 일시적인 경제회복이 저임금 장시간의 강제노동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을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100년 전과 지금의 n포 세대는 자본주의 경제위기라는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지금의 n포 세대는 100년 전 세대가 갖지 못했던 선택지를 하나 더 갖고 있다. “밟히면 밟힐수록 꿋꿋해지는 파산자의 심장”을 공유하고 있는 n포 세대의 미래는 그 선택지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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