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4.(일)


견훤이 도읍한 후백제 궁궐터, 전주 동고산성

[전주대 신문 제905호 07면, 발행일 : 2020년 12월 2일(수)]   ■ 성곽의 개요 성곽은 군사적이고 행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성내에 거주하는…

By editor , in 문화 , at 2020년 12월 2일

[전주대 신문 제905호 07면, 발행일 : 2020년 12월 2일(수)]

 

성곽의 개요

성곽은 군사적이고 행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성내에 거주하는 자들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구조물로 내성과 외성을 모두 포함한다.

성곽의 기원은 문헌상에 나타난 것으로는 사기(史記) 조선전에 평양성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대체로 기원전 2세기에 해당된다.

삼국의 성곽시설은 처음에는 간단한 목책이나 토성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본격적인 석축에 의한 성곽은 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4세기 이후에 가능하였다.

삼국시대 이후의 성곽은 산성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초기에는 낮은 구릉에서 토성으로 축조하다가 점차 성의 규모도 커지고 석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지형적으로도 처음에는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정상부근에 테를 두른 듯한 테뫼형이 많으나, 이후에는 골짜기를 둘러싸는 포곡형이 주류를 이룬다.

 

전주 동고산성-전북기념물 제44호

동고산성(東固山城)은 전주 교동과 대성동 일원의 승암산에 위치하며, 통일신라 말기의 후백제 견훤의 왕성으로 전하고 있다.

산성은 서북으로 면한 수구의 남북으로 뻗은 규암 절벽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골짜기를 감은 포곡식산성이며, 남북으로 날개모양의 익성(翼城)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주가 후백제의 왕도였음은 여러 문헌에 보이지만, 이 산성을 두고 왕궁지라 한 것은 1688년(숙종 14)에 성황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쓰여진 『성황사중창기』에 잘 표현되어 있다.

동고산성은 1981년 개괄조사가 이루어진 후, 6차례 걸쳐 건물지와 성문 등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성벽은 산 능선의 외사면에 내탁식으로 축조하였다. 성의 길이는 둘레 1,574m 규모이며, 날개모양의 익성은 북쪽이 112m, 남쪽이 123m이다.

성벽 높이는 4m 정도이며, 능선 바깥쪽을 깍아 회랑도를 설치하고 바깥쪽에 석축을 하였다. 성벽에는 3개소의 성문이 있으며, 북문과 동문, 남문은 근래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성문의 구조와 시설이 어느 정도 규명되었다.

성의 내부에는 3단의 대지가 있으며, 건물지와 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 토기류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1단은 길이 117m, 너비 20m, 중간 대지인 2단은 길이 133m, 너비 26m로서, 건물지 초석과 기와편들이 퇴적되어 있다.

이중 2단의 건물지가 왕궁터이며, 전면 40칸・측면 4칸으로 길이만 해도 85m에 이르고 있다. 주춧돌은 6열・188칸・236개가 존재하여 우리나라 궁궐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이곳에서는 󰡐전주성(全州城)󰡑의 명문이 있는 막새가 출토되었으며, 무사를 새긴 막새기와도 보이고 있다.

또한 중방(中方), 관(官), 천(天) 등의 명문기와도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10여개소 이상의 건물지가 더 조사되었으며, 내부에는 우물이 있어 지금도 식수로 사용되고 있다.

3단 건물지 전방에는 넓은 공터가 있으며, 이는 당시 훈련장으로 추정된다.

백제 재건의 기치를 든 견훤은 900년(통일신라 효공왕 4)에 완산주를 점령하고, 이곳에 도읍을 정해 37년간 존속하였다.

동고산성에서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견훤의 고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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