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and Vision(2) 창37:5-11
[전주대 신문 제924호 10면, 발행일: 2022년 10월 26일(수)]
신동아학원과 산하기관 4개 학교는 매월 첫 주 수요일마다 학교를 위한 월삭기도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월삭기도회에는 차종순 이사장님과 4개 학교장, 부총장 및 교감, 선교처장 및 교목 등이 참석하며 예배와 기도를 나누고 있습니다. 10월 5일(수) 진행된 10월 월삭 기도회 차종순 이사장님 설교 내용입니다.
꽤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은 10,000시간(10년)의 법칙을 말하였지만, 성경은 13년 법칙을 말합니다.
요셉은 17세에 하나님의 꿈을 보고, 13년이 지난 30세에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다윗은 17세에 기름부음을 받고 30세에 꿈이 이루어져서 임금이 되었으며,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1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과 고향 다소에서 지내다가 14년 째에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 목회자에서 선교사로 나섰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은 13년 법칙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더 긴 준비기간이 필요하였는데,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미디안의 목동으로 40년이 지난 후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40년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고,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30년을 보낸 후 3년 공생애를 이루었습니다.
- 꿈을 이룬 사람들은 다 오래 시간의 준비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들은 최소한 13년의 이 기간에 무엇을 하였을까요? 가지치기(pruning) 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가능성 가운데에서 하나를 남겨놓고 다른 것들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꿈을 가진다는 것은 많은 것을 끊고, 잃어버리는 자발적 포기(voluntary abnegation)를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버리고, 끊는, 마음의 아픔도 있겠지만, 감수해 내야 합니다.
꿈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concentration)을 말합니다. 그래서 고집이 세고,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주변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일이 많고, 그로 인하여 외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저 멀리 있는 목표가 보이기 보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서 주변과 잘 어울리면서도 “다른 놈이다, 별난 놈이다, 때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놈이다…”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외로움의 시간,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틈틈히 마련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외로움을 더 즐거워하는 사람((loneliness Lover)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변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일도 있겠지만…게의치 않고 앞만 보고 가는 사람, 시종여일하게 일관성(consistency)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 모세, 다윗, 사도 바울…성 어거스틴, 루터, 칼빈…이기풍 목사, 최흥종 목사, 주기철 목사도, 손양원 목사도 다 그랬습니다.
- 「신동아학원」에 속한 네 학교에서는 요셉과 같은 사람을 “적성”을 발견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모두,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다같이 이러한 성경의 꿈꾸는 사람들처럼…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가려 합니다. 이것을 적성으로, 혹은 윤리라고 표현해도 좋고, 세계관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에서 그리고 희랍시대가 다 이렇게 교육하여 왔었습니다.
고전적 헬레니즘 시대(Socrates-Platon-Ariostoteles)는 가장 먼저 “법”(νόμος)을 가르쳤는데, 성경은 율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율법/법 νόμος는 νέμω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할당하다(to allot), 맡기다(to appoint)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레니즘에서는 신이 나에게 맡긴, 할당해 준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것을 교육의 출발로 삼았습니다. 성경에서도 이것을 “분량대로의 축복”(창49:28)으로 말합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들에게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학원에서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다같이 “내가 맡은 분량”“몫”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되고, 그 파악한 분량대로 학생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몫을 알 수 있는 길이 최우선적으로 우리가 시행하는 각종 chapel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으로 인하여…여러 사람이 외부로부터 질문해 왔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현행대로 지속합니다”
두번째로는, 신이 나에게 맡겨준 분량, 몫(μέρις)을 잘 감당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로 인하여 공동체가 질서(τάξις)를 가지고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신의 행동 규범(ἔθος)으로 삼도록 가르치고, 권장합니다. 그러나 내가 내 몫을 감당하면 관용, 허용이 있지만…반대로 감당하지 않거나 못함으로써 공동체 질서에 해를 끼치면 신으로부터 벌(ἀναθέμα)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윤리(ethics)로 번역하지만, 윤리(倫理)는 사람이 사람들과 모여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치입니다.
세번째로는, 이 두 가지를 배우고 깨친 다음에 자기의 삶을 위한 생업의 수단이 되는 장사, 기술…등을 의미하는 기술(τέχνη)을 배우는 것입니다. 기술과 장사는 맨 마지막에 배우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기술이 가장 우선인 것 같습니다. 공부잘하는 기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얻는 기술…심지어 교회마저도 천국가는 기술, 예수 잘 믿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렇게 기술을 강조하였던 사람들을 소피스트(sophist)라고 합니다. 이들은 지혜(σοφία)를 가르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유지에 관한 지혜를 가르치는 지혜로운 사람들(σοφός)이라고 자처하였지만, 후대는 이들을 가리켜 교묘하게 잘 꾸며내는 사람들, 속이는(σοφίζω) 사람들이라 하여 “궤변철학자”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법을 가르쳤던 각종 학파들 때문에 유대주의는 없어졌고, 출세와 직업을 위한 궤변, 수사학, 표현력…등에 치중하였던 고전적 헬레니즘도 사라졌고…한국의 학교들이 입학과 성적 그리고 취직과 출세를 가르치는데 집중하면 사라질 것이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며…방법론적 신앙을 가르치는 한국교회도 동일한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러한 방법론적 혹은 기술적 삶을 이겨내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꿈, 비전, 분량, 몫이 무엇인가를 찾음으로써 국가와 이웃을 섬겼던 사람들, 원리에 충실하였던 사람들은…한국 사회의 각 시대마다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요셉처럼 혹독한 시련의 삶을 살면서도 끝까지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꿈과 비전을 향하여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장 앞세우면서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ㄱ. 임숙재 총장(1891-1961)
조선조 말엽에 한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란 말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충청도 예산의 한 여성이 있었는데…그녀는 17세에 결혼하였으나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19세에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시집에서 구박받고 친정에도 가지 못하고, 보는 사람마다 혀를 차면서 안타까움을 표하고, 팔자가 세다고 하고…참으로 한심스러운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비녀를 풀고, 가위로 머리를 싹뚝 자르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갔습니다. 어느 부잣집 대문을 두드리고, 식모살이를 자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밤이면 야간학교에 다니게 해 줄 것과, 주일 날이면 교회에 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주인 집안도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녀는, 숙명여학교 야간부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우등생으로 졸업하였고, 1917년에 일본 도쿄여자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1921년에 돌아와서는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나중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교육국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1939년 숙명여전 교수로 취임하였고…해방 후 숙명여전 교장이 되고, 1955년에 숙명여자대학교 초대학장으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분이 바로 임숙재(任淑宰) 총장입니다. 신세타령하면서 현실에 타협하였더라면, 여느 시골의 아낙네로 삶을 마감하였겠지요! 임숙재 총장은 제자들에게 “환경을 다스리세요!”라고 늘쌍 말하였습니다. 구덩이에 갇힌 요셉(Joseph)이 만일 하나님께 내가 언제 이 꿈을 달라고 하였던가요? 괜히 나에게 꿈을 주셔서 형들에게 미움받게 하고, 이제는 내가 죽게 되었는데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까? 왜 나를 살려주시지 않습니까? 라고 투정하고 불평하고 안달하였더라면 요셉이 요셉될 수 있었을까요! 꿈이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에서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에너지입니다. 힘입니다. 용기입니다. 버틸 수 있는 인내력이고 지구력입니다.
ㄴ. 박대연 교수/사장(1956~ )
오래 전 MBC 방송국에서 제작한「성공시대」라는 입지전적으로 성공한 사람 100사람을 선정하여 주일날 밤에 방영하였던 일이 있습니다. 하림의 김홍국 장로/회장도 방영되었지만, 저에게는 광주 사람 박대연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부모는 담양에서 사업이 실패하여 광주 사직공원아래 빈민촌 단칸방으로 밤봇짐을 싸서 온식구가 이주하였습니다. 일년 후에 아버지, 할아버지가 세상뜨고…어머니는 사직공원에서 튀밥과 뻔데기…등을 팔아서 근근히 입에 풀질을 하였습니다…배곯는 날이 얼마였을까요…인근의 대성초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학교에서 급식으로 빵을 받아 입어 넣다가, 집에 있는 동생들이 생각나서 그대로 싸 가지고 와서 동생들에게 주었습니다…야간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광주상고)를 마쳤습니다…낮에서 광주고속버스 회사의 차를 닦고 야간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전기가 없어서 사직공원 가로등 불빛으로 공부하였습니다…고등학교 2학년 때에 누나가 남의집에 식모살이를 가는데 동생 대연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이었습니다…학교를 졸업하고 “한일은행”_ 광주지점에 취직했습니다. 그 당시에 은행의 업무가 컴퓨터에 의한 On-line 으로 바뀌었고, 컴퓨터가 고장나면 박대연이 고치곤 하였으며, 컴퓨터를 알게 되었습니다…13년 근무하고, 동생들 결혼시키고, 미국의 여러 대학을 거쳐, LA에 있는 남가주대학교(USC) 컴퓨터 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하루는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탈장이었습니다. 수술 후 한 달 입원하라고 하였는데 돈이 없으므로 수술 뒷날 붕대로 동여매고 퇴원하였습니다…남들이 싫어하는 컴퓨터 시스템 공학을 전공하였습니다…당시 한국의 컴퓨터 공학에서는 이 분야의 적임자가 없어서 KAIST 교수를 지원하였고 선발되었습니다…광주 사람이다는 것을 알고, 광주 서중과 일고를 나왔느냐, 서울대학교 나왔느냐…그는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 큰 조직의 중앙에 있는 main computer의 중앙 monitor가 수없이 들어오는 접속에도 불구하고 down되지 않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그 액수가 무려 254억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TMAX 라는 회사의 회장입니다. 저는 그 방송을 보면서 저의 주변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고, 공간적으로도 가까웠고…나이로는 막내 동생과 비슷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만일 저 환경이었다면 나는 어떠하였을까? 원망과, 절망, 한탄 그리고 좌절이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 우리 신동아학원이 가는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요셉이 꿈과 비전을 가졌다가 구덩이에 갇히고, 종으로 팔려가는 고난의 길을 갔듯이, 우리도 기독교적 영성을 회복하는 학원을 부르짖고 추진 중인데… 각종 난관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타협하면 과연 요셉이 나왔을까요? 임숙재 총장과 박대연 교수가 나왔을까요? 아니, 공장이 다 불타버린 상황에서 좌절하였더라면 어떻게 오늘의 하림이 되었을까요? 김홍국 장로는 그 일을 계기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찾았습니다. 새벽에도 찾았고, 하루 종일 찾았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하림”이 되게 하였습니다.
무에서 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창조입니다. 우리도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라고 생각하면서 유(有)를 창조해 주실 하나님께 “기대하면서,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모른채 하시면서 등 돌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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